출국을 코앞에 두고도 배낭조차 꾸리지 못했다. 아침 일찍 여행사에 한걸음으로 달려가서 Eurail Pass를 받아오고 외환은행으로 속보했는데 오늘따라 출국하는 사람들이 왜 이리 많던지…. 초침은 날 기다려주지 않고 이륙 시각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었다.
배낭을 꾸릴 시간이 1시간도 채 남지 않았지만 짐을 꾸리는 데에는 이미 베테랑이 되어 있어서 신속히 해결하고 서둘러 공항으로 향했다.
날씨는 비교적 화창한 편이었지만 제1 도착지가 될 일본은 태풍으로 말미암은 기상 악화로 Osaka행은 모두 결항하고 Tokyo행은 예정대로 출항할 모양인데 어머니의 걱정이 태산이시다. 당신 아들의 뒷모습조차 놓치고 싶지 않으셨던지 - 언제나 그러셨지만 - 내 모습이 출국장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자리를 뜨지 못하셨다. 사랑하는 당신 아들을 세상에 내놓으실 때마다 그렇게 마음을 졸이시면서도 어머니는 늘 내가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기를 바라신다.
95년도의 대사건만 아니었어도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진작에 미국땅에서 자리를 잡았을 텐데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세월이 원망스럽기 짝이 없다.
내 좌석은 언제나 창가 쪽 통로이다. 창문 밖 경치도 보이고 화장실을 출입하기도 편하므로 항상 요구하는 자리이다. 내 좌석 오른쪽의 두 자리는 아리따운 두 아가씨가 차지하고 있어서 Tokyo에 도착할 때까지 긴 시간은 아니지만 유쾌한 비행이 될 것 같아 흐뭇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아저씨, 껌 드세요."의 대목이 내 말문을 열어놓고 이메일 주소까지 주고받게 되었다.
이륙 후 반 시간 정도 지나자 기체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태풍 때문에 Osaka 공항은 폐쇄되었는데 Tokyo에 도착하려면 Osaka 상공을 지나쳐야만 한다. 경고음과 함께 "Ladies and gentlemen, this is captain speaking. Now, we have turbulence. Please... (승객 여러분, 기장입니다. 난기류에 휩싸였으니...)" 라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나서 기체는 더욱 불안하게 흔들거렸다. 아가씨들은 이미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93년도 싱가포르 상공에서 겪었던 악몽을 주입하면서 그들을 더욱 긴장된 분위기로 몰아넣다가 다시 안심시켜 주려 하자 진동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태풍 영향권을 벗어나자 하늘은 잔잔한 호수로 변했고 비행기는 순풍에 돛을 단 배처럼 사뿐히 Narita 공항에 내려앉았다.
200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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