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사랑하는 친구를 만나고자 아시아나 마일리지로 태국행 비행기 표를 얻었다. 93년 7월 싱가포르에서의 만남이 마지막이라 종일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는데 친구 어머니 때문에 불쾌한 감정을 안고 날아가야 했다. 부잣집에서 태어나 한 번도 고생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친구가 잘난 부모 덕분에 장가도 일찍 가서 부인의 내조를 받으며 편안히 생활하고 있는데 그게 고생이라면...
가난한 집 자식이 미국유학을 가는 바람에 온 가족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고, 그래서 더 목숨을 걸고 공부에 전념한 덕분에 4.0 만점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는데 졸업 3개월을 앞두고 학업을 중단해야 했던 내 고통은, 한 달 식비가 $30를 넘을 수 없었던 내 배고픈 유학생활은 조롱거리에 지나지 않는 건가.
내가 미국유학 중에 녀석이 결혼해서 나 대신 내 어머니께서 결혼식에 참석하셨는데 (가짜 하객의 출입을 막기 위함이었겠지만), 그 부잣집에서 축의금 봉투 한 장당 한 장의 식권만 내주는 바람에 단체로 한 장의 봉투를 내민 하객들은 돈을 내고 식권을 사야 했다고 내 어머니께서 무척 실망스럽게 말씀하셨다.
내가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태국을 방문하는 게 아닌데 친구 어머니는 오직 당신 아들 걱정밖에 하지 않았고, 현지에서도 값싸게 구할 수 있는 퐁퐁과 수세미까지 방안 가득 짐을 싸놓으셔서 없는 돈에 택시를 불러 짐을 실어가야 했다. 그 많은 짐을 또 어떻게 공항까지 들고가야 할까? 3단짜리 여행 가방도 사야 했고, 공항까지 다시 택시를 타고 가야 했고, 방콕에 도착해서 또 택시를 타는 바람에 내 경비는 바닥이 났다. 당신 아들이 그토록 소중하다면 아들 친구도 어느 부모에겐 소중한 자식이 아닐까?
기독교인들이 내 글을 읽으면 분노하겠지만, 왜 기독교인들은 하나같이 그 모양인지... 아직 기록을 다 마치지 않은 타산지석에 나와 내 가족, 내 이웃들이 당해온 숱한 사연이 남아있으니 반성하고 부끄러워할 일이다. 나는 외국에서 한국인이 잘못을 저지르면 변호하지 않고 사과한다. 그의 잘못이 아닌 '우리' 잘못이므로.
방콕에서 그를 만나기까지 불쾌한 상황은 계속 전개되었고 3년 후 그를 다시 만났을 때는 그의 어머니와 부인까지 나와 내 어머니를 아주 좋지 않은 사람으로 낙인찍어 놓았다는 말을 전해 듣고 우리는, 아니, 나는 헤어졌다.
93년도에 둘째 누나와 처음 가보았던 코사멧을 다시 방문했다. 그때만 해도 하루에 100밧짜리 방갈로가 널렸었는데, 관광객이 많이 몰리다 보니 800밧짜리 이하는 찾을 수가 없다. 당시 환율로 약 ₩24,000 '이 많은 짐을 어떻게 들고 왔니?' 엄청난 짐을 보고 놀란 친구가 치앙마이로 돌아가기 전에 받지 않겠다는 돈을 강제로 쥐여준 덕분에 800밧짜리 방갈로에서 사흘이나 묵을 수 있었다. 못난 부모보다는 나은 녀석이라 다행이었지만... 3년 후의 만남이 마지막이 되었다.
복잡한 심경을 안고 날아왔지만 탁 트인 바다를 보니 잠시라도 시름을 잊을 수 있어서 좋다. 햇볕이 너무 강렬해서 모자 하나 사서 쓰려고 숙소로 돌아오니 하우스 키퍼 두 명이 히죽거리며 묻는다. 혹시 홍콩에서 온 영화배우가 아니냐고. Busara라는 아가씨는 '펜'이 있느냐고 연거푸 질문하길래 가방에서 '펜'을 꺼내 보여주니까 다른 하우스 키퍼가 깔깔거리며 그 '펜'이 아니라 '프렌드'를 의미하는 거란다. "아! 일행이 있느냐고? 아니. 혼자 왔는데." 나는 그 뜻으로 말했는데 Busara는 "No, I don't have a girlfriend."로 알아들었다.
이 두 아가씨가 수시로 찾아와서 말을 걸지만, 이들의 영어가 짧아서 좀처럼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답답했던지 Busara가 영어 잘하는 지배인을 데리고 왔다. 그때 Busara의 질문이 'Do you have a pen?'도 아닌 'Do you have a friend?'도 아닌 'Do you have a girlfriend?'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흘 밤이 긴 시간이 아닌데 Busara가 태영사전까지 들고 자주 찾아와서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대학을 가고 싶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꿈도 꿀 수 없다고, 800밧의 월급은 생활비로 쓰기에도 빠듯해서 책을 살 수 없다고... '내 방값이 하루에 800밧인데, 네 월급이 800밧이구나! 인생이 참 불공평하지.'
남은 돈이 얼마 안 되었지만, 방콕만 돌아가도 하루 70밧짜리 게스트 하우스가 있으니 그녀에게 돈을 좀 주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아닌 '그'였다고 해도 주었을 텐데 '그녀'였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 또 한 번의 실수.
'이 돈으로 책 좀 사고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꼭 가렴.' 800밧을 쥐여주니까 거절하지 못하고 애써 눈물을 감춘다.
'Jean, I love you!'
'Please don't! 너보다는 나을지 모르겠지만 나도 아픈 삶을 살고 있단다. 네 사랑을 받아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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