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을 중단하고 언제 돌아온다는 기약도 없이 유타주를 떠나야 했다. 유타가 내 성격과는 맞지 않는 주라 개인적으로는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만 '영웅'이라는 칭호를 얻을 만큼 피 끓는 청춘을 멋지게 장식했던 곳이니 그 아쉬움과 억울함을 내 짧은 언어로는 다 표현할 길이 없다.
설상가상으로 귀국을 며칠 앞두고 영남사 아주머니가 또 거액의 공금을 횡령한 뒤 행방불명되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는 눈에 보이는 모든 가구에 압류표시의 딱지를 붙여놓았고 집은 채권자들의 점령지가 되어 있었다. 폭력배가 어머니의 멱살을 붙잡고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욕설과 함께 끌고 나가도 저항할 힘이 없었고 그들 앞에서 무릎을 꿇으신 아버지의 눈물 어린 호소도 무자비하게 짓밟혔다. 하루하루가 생지옥이었다. 죽고 싶었다...
그렇게 굴욕적인 삶을 사느니 죽는 게 낫겠다고, 함께 세상을 뜨자고 울부짖었지만, 어머니는 당신 아들의 삶만은 포기할 수 없다고 하셨다. "너만은 이 지옥을 빠져나가서 살아남아라." 어렵게 장만하신 50만 원을 손에 쥐여주시면서 내 등을 떠다미셨다. 어느 불효자식이라도 어머니가 그 지경에 계시면 떠나지 못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만, 나는 매정하게 떠나야만 했다. 내 금융권은 모조리 박탈당했고, 채권자들의 점거와 농성, 압력으로 내가 더는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어머니를 생지옥에 남겨두고 뒤돌아보지 않고 매몰차게 길을 나섰지만 흐르는 눈물은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유타주로 돌아가는 편도 비행기 표와 50만 원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복학을 명목으로 유타주로 위장입국을 한 뒤 6개나 되는 suitcase를 끌고, 짊어지고 뉴욕에 도착했을 때는 단돈 1센트도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 구인광고를 보고 전화를 걸었을 때
"여보세요. 사장님이십니까? 안녕하세요. 광고 보고 전화 드렸는데요."
"네. 뉴욕에 오신 지는 얼마나 되셨지요?"
"뉴욕에 온 지는 두 달 되었는데요. 유타주립대 학생입니다."
"두 달이라…. 저희는 주 고객이 미국인이라 영어가 필요하거든요. 죄송합니다." 딸깍
전화를 끊어버린 사장. 이 무지한 사장한테 남북한 면적의 1.5배나 되는 유타도 미국땅이라고 설명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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