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면부지의 교포 집에서 서러운 더부살이로 시작된 뉴욕생활을 접고 호주로 날아가자 더 많은 시련이 나를 맞이했고, 그나마 호주생활은 전주곡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캐나다에 도착하고 나서 알게 되었다.
뉴욕에 일부 짐을 남겨두고도 80kg이나 되는 짐을 끌고 와서 짊어지고 다니느라 어깨엔 굵은 줄 자국이 사라질 날이 없었지만 내 어깨를 짓누르는 건 가방의 무게가 아닌 혹독한 삶의 무게였고, 뼈가 으스러지도록 일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진저리나도록 체험하고 나서야 알았다. 하루 한 끼 식사도 제대로 못 하고 15시간 이상의 중노동에 시달리다 보니 하늘이 내내 노랗게 보였고 하루 두, 세 시간의 새우잠을 자고 눈을 뜨면 영락없이 열 손가락이 안으로 굽어진 채 굳게 굳어 있어서 새벽마다 그것들을 펴느라고 한참 씨름을 해야 했다.
그래도 간간이 어머니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으면 어떤 고통도 시련도 견딜 수 있었다. 상황이 악화할수록 난 어머니께 더 많은 - 잘 먹고 편안히 잘 지낸다는 - 거짓말을 했고, 그건 - 생지옥에 남아계신 - 당신께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굴욕적이고 치욕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강제로 내 등을 떠다민 분이 아니셨던가!
어느 을씨년스러운 아침, 밤새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공중전화부스로 달려갔는데 아니나다를까 더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여러 차례 정확한 번호를 반복해서 눌렀지만 없는 번호란다. 둘째 누이로부터 결국 구속을 당하셨다는 비보를 듣고 전화부스를 부둥켜안고 대성통곡을 했다. 시드니의 한복판에서……. 나를 지나치는 숱한 사람들의 시선도 내 슬픔을, 분노를 감추지 못하게 했다. 무고한 내 어머니를 그렇게 만든 짐승만도 못한 존재들은 내 글을 꼭 읽어야 한다. 자신이 살기 위해 남을 죽이는 것만큼 죄질이 나쁜 잘못은 없으니까.
6개월간의 호주생활을 전·후반전으로 요약하자면 전반전인 처음 3개월 동안은 굶기를 밥 먹듯 했고, 후반전 3개월은 빚 갚는데 에너지를 다 소모한 기간이었다.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썩은 과일들을 봉지에 주워담아 식사를 해결하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고, 호텔에서 일자리를 구했을 때는 - 부끄러운 얘기지만 - 손님들이 먹다 남은 빵과 우유 등을 훔쳐먹기 시작했다. 새 빵과 우유는 아니었지만 태어나서 처음 배운 도둑질이라 하늘을 올려다볼 낯이 없었다. 어쩌다 얻어먹을 기회가 생기면 폭식을 해서 내 체중은 시시각각 줄기와 불어나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도착도 하기 전에 안고 날아간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만 갔고, 마지막 미소마저 탈취당한 무표정한 얼굴로 사람들을 대하면 - 내 의지와는 반대로 - 소외당하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뉴욕에서 호주로 떠나기 전에 진 빚과 호주에서 불어난 산더미 같은 빚까지 다 청산하고, 캐나다행 비행기 표까지 예약하고 나니 남은 액수가 총 $2였는데, 그 돈으로 캐나다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때까지 버텨낸 보름이 마치 15년 같다. 후반전에는 그나마 안정적인 수입을 얻어 그 많던 빚을 다 갚을 수 있었지만, 남의 일을 임시로 얻어 한 것이어서 출발 보름을 남겨놓고 내주어야 했다. 보름만 더 일할 수 있었다면 캐나다 생활도 그리 음울하게 시작되지는 않았을 텐데 운명의 수레바퀴는 내 작은 소망을 잔인하게 뭉개버렸다.
하루 방값 $14와 식사비까지 근 $30가 매일 필요한 액수인데 $2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전화비도 되지 않으니 살아남기 위한 도박에 승부수를 던졌다. 보통 사람들보다는 빨리, 그리고 오래 기억하는 내 능력을 활용해서 도박장의 slot machine 프로그램을 외우기 시작했다. 한 기계 앞에 꼬박 5시간을 서서 암기한 다음 전 재산인 $2를 넣고 하루에 필요한 액수인 $30를 따냈다. 그렇게 보름을 도박으로 연명하고...
캐나다를 향해 몸을 띄웠다.
- Episode 1에서 시작 -
재심대까지 불려 가서 출입국 관리관의 입을 봉쇄하고 마침내 최대체류기간의 스탬프를 받고 나오기까지 장장 40분간 펼쳐진 한판 대결은 연출도, 낭만도 아닌 - 살을 깎는 고통이 수반되는 - 내 참담한 현실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게 '낭만적인' 삶을 사는 내가 '마냥 부럽다.'라고 한다. 하긴 나 자신도 믿을 수 없는 참으로 기막힌 세월을 살아왔는데 그 긴 스토리를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한 아가씨는 이런 질문도 했다. "그렇게 힘든 생활을 하실 때마다 그 생활을 '포기'하고 조국에 돌아오고 싶은 마음은 없었나요?" 그녀에겐 내가 마치 '체험 삶의 현장'이나 '도전 지구탐험대'에 출연한 배우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리라!
혹자는 여하튼 내 용기가 부러워서 자신도 조만간 체험 길에 오르겠다는 말을 했는데 며칠 몇 달 누군가의 삶을 모방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실제로 호주에 있을 때 고생을 사서 하기 위해서 건너온 한 부유층의 사람이 있었다. 무일푼으로 왔다지만 여차하면 사용할 수 있는 (내게는 없는) 신용카드가 그의 안주머니에서 그를 든든히 지켜주고 있었고, 언제든 그가 원할 때 (내게는 없는) 조국의 안식처로 돌아갈 수 있는 몸이었는데 그는 자기 삶과 내 삶이 동등하다고 주장했고 - 수개월이 지나도록 끝내 신용카드의 힘을 빌리지 않고 '맨주먹으로' 생활해온 것을 자랑스레 여기며 - 마치 내 고통을 모두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알은체했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활해온 그를 '존경'했지만, 내게는 그가 그야말로 도전 지구탐험대의 게스트에 지나지 않았다. 스스로 선택한 생활이라면 - 일정 기간 누군가와 똑같은 생활을 해왔을지라도 -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삶의 고통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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