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시절 - 그때는 대체로 가난했던 시절이라 부끄러울 것도 없었지만, 결식이 잦았던 나는 - 황금알이 흰 쌀밥을 장악하고 있는 도시락을 들고 등교하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소금을 한 움큼이나 넣어 부친 계란 한 알을 4 등분해서 4남매가 나눠 먹던 그 가슴 아픈 추억이 아직도 뇌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때보다는 세상도, 내 형편도 많이 나아져서 마음만 먹으면 끼마다 계란 하나쯤 더 먹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예기치 않은 사건들을 숱하게 당하다 보니 그 시절의 고충이 - 아련한 과거사로 묻히지 못하고 - 반복되는 현재시제로 존속하고 있다.
내 집에서 불과 3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계란 도매점에서는 왕란이 한 판에 5천 원, 도매점을 둘러싸고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여러 할인점에서는 중란 한 판이 고작 2,700원 안팎에 판매되고 있는데 그 비싸지도 않은 계란 한 알도 마음 놓고 먹지 못할 때가 잦다. 혹자는 냉장고가 비기 전에 미리 장을 봐두라고 충고를 하지만 내가 장을 못 보는 이유는 시장이 멀어서도, 게으름 때문도 아님을 해명하는 일조차 구차스럽다.
"양계장에서 갓 올라온 싱싱한 왕란(王卵)이 두 판에 5천 원. 엄청 싸게 드립니다. 맛이 없으면 돈을 받지 않습니다. 왕란이 두 판에 5천 원."
계란이 떨어져서 한동안 계란 없는 라면을 먹고 있었는데 파격적인 가격(?)의 계란 장사꾼이 요란스레 확성기를 울리다가 멀어지고 있었다. 창 밖을 내다보며 잠시 망설이다가 5천 원을 거머쥐고 놓칠세라 바람처럼 달려나갔다. 동전을 제외하고 나면 마지막 남은 지폐였지만 이런 호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의 트럭에는 '계란 두 판이 ₩5,000'임을 알리는 광고문구가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도 한눈에 식별할 수 있도록 대문짝만하게 붙어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두 판 주세요."
"어떤 알로 드릴까요?"
"네???"
"왕란은 두 판에 만 원, 중란은 7천 원, 소란은 5천 원입니다."
"......................"
상기(上記)한 글을 잘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가 얼마나 큰 거짓말을 했는지 대번에 파악했을 것이다. 그가 가리킨 소란은 거의 메추리알 크기여서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이런 얄팍한 상술에 속아보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텐데 거짓된 상술보다 더 큰 문제는 거짓을 눈감아 주어왔던,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눈감아주고야 말 우리의 소극적인 자세에 있다. 장사꾼들의 상술이 응당 그러려니 하는 안일한 사고, 혹은 체념이 그들에게 허위 광고에 대한 정당성을 제공해 주어왔던 셈이니까…. 우리의 의식이 개혁되지 않으면, 우리가 거짓과 맞서 과감히 투쟁하지 않으면 그들의 그릇된 상술도 달라지지 않는다.
붉은 악마나 파란 도깨비의 결속력은 세계를 감동하게 했고 대표선수들의 선전 분투로 명실공히 스포츠 강국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지만, 그것이 문화 강국이나 일등 국민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2002년 월드컵의 폐막식을 치른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그때의 감동, 그날의 함성을 재현하는 플래시 몹이 유행하고 있다. 그 행위 자체는 어떤 사회적인 문제도 야기하지 않고 한마음 한뜻으로 뭉친다는 점에서는 고무적인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정작 필요할 때 - 불의와 부조리와 맞서 싸워야 할 때 - 는 단결이 되지 않는다.
호주에 있을 때 내가 처음 시작한 일은 체리 농장에서 체리를 수확하는 일이었다. 당시 내 하루하루가 얼마나 절박했는지는 2004년 7월 31일 자와 (아직 기록을 마치지 않은) 2004년 9월 8일 자의 Jean의 眞한 이야기를 읽어보면 참고가 되겠지만 처음 이 글을 접하는 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그리고 위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내 삶, - 어떤 삶 속에서도 흔들려본 적이 없는 - 나의 확고한 가치관과의 연관성을 명증하기 위해서 당시의 상황부터 (* 0.1%를 넘지 않는 선에서 공개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만) 요약해보겠다.
내겐 '우선 한 달 내'로 갚아야 할 약 430만 원의 빚이 있었다. 나는 분명히 '우선 한 달 내'를 강조했지만, 숫자만 보고서 '430만 원밖에'라고 성급히 판단하는 이들이 있을 것 같아서 (* 사악한 무리의 배신 덕분에 10년이 넘게 짊어져 왔던) 外의 빚까지 기술하자면 100배가 넘는 - 더 정확히 말하자면 111.6배나 되는 - 빚이 남아 있었다. 정말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을 때는 - 주지의 사실이기도 하지만, 세상 물정에 어두운 (배부른) 특권층에겐 무지의 사실이라 이해를 구하지도 않지만 - 430만 원이 아닌 43만 원도, 아니, 4만 3천 원도 큰돈일 수 있다.
뉴욕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다시 제삼국 행을 결심하게 된 것이었고 어렵사리 2천 달러를 융통해서 호주행 비행기 표를 끊고 이것저것 준비하고 나니 100달러밖에 남지 않았다. 그 돈만 들고 탑승해야 했고 Alaska와 일본, 브리즈번을 거쳐 시드니 공항에 착륙할 때까지 - 비행시간만 정확히 28시간, 기내식 7끼, 탑승객과 승무원이 세 번이나 바뀌도록 - 나는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던 최장거리 탑승객이었다.
US 달러와 AS 달러의 환시세 덕에 100달러가 180달러가 되었지만 내가 갚아야 할 돈은 US 2천 달러에 상당하는 한국 돈이었기 때문에 한 달 내로 그 돈을 벌어서 송금해야 하는 나로서는 더 불리한 상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뉴욕을 떠나기 전만 해도 1천 원을 넘지 않던 US 달러 환율이 - IMF의 영향으로 - 한순간에 2천 원으로 껑충 뛰어버렸다. 210여만 원으로 계산했던 액수가 430만 원으로 둔갑을 한 것이다. 조금만 더 일찍 뉴욕을 빠져나왔더라면 반대의 상황이 연출되었을 텐데 한 달이나 내 발길을 막는 사건이 발생했다.
첫날부터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Tax File Number 없이는 도시에서 - 관광비자를 가지고, 그것도 교포 사회가 아닌 현지인 사회에서 - 일자리를 구한다는 것이 예상했던 대로 쉽지 않았다. 힘이 들어도 내가 교포 사회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않는 데는 - 장, 단기 국외 어학연수나 무전여행 등을 계획하는 사람들에겐 좋은 지침이 될 - 분명한 이유가 있다. 어느 나라의 (한인) 교포 사회에서도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공통되는 불문율이 있는데 바로 Training이라는 명목으로 처음 2~3주간은 - 하루 12시간 이상의 중노동을 제공하고도 - No Pay, 즉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같은 입장, 즉 신분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교포 사회를 경험해 본 이들은 잘 아는 사실이지만 전문직종이 아닌 이상 2주 이상의 Training 기간은 전혀 불필요한 것이고 No Pay라는 부당한 처사도 오직 (한인) 교포 사회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부조리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2~3주간의 자원봉사를 마치고 정식으로 일을 시작한다 해도 식사시간, 쉬는 시간, 지각 등은 - 단 5분이라도 계산해서 - 철저히 임금에서 제하고, 하루 2~3시간의 overtime, 즉 초과 근무에 대해서는 시간개념이 절대 없는 곳이 자랑스러운(?) (한인) 교포 사회다. 때로는 2~3개월 이상의 임금 체급도 각오해야 한다.
반면 현지인 사회에서는 - 교포 사회에서와 같은 종류의 단순한 일이라면 - Training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일이 거의 없고, 실제로 Training이 필요한 일이라서 Training을 받는 기간이라도 그들은 임금을 지급한다. (한인) 교포 사회에서와는 달리 출근 카드를 찍는 순간부터 퇴근 카드를 찍는 시점까지 근무 시간으로 계산되므로 식사시간, 쉬는 시간, overtime에 대한 임금과 노동력을 부당하게 착취당하는 일이 없다.
한인사회와 현지인사회의 불유쾌한 비교는 이 정도로 하고 다시 내 일신상의 문제로 돌아가기 전에 내가 분명히 역설하고 싶은 것은 나는 우리 민족의 - 재내 국민이든, 재외 교포든 - 보편적인 잘못을 지적하는 것뿐이지 모두가 잘못을 범하고 있고, 모두가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니 부디 확대해석은 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가 어떤 잘못된 부분들에 대해서 비판을 할 때마다 대다수 사람이 -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 나를 신랄히 비난하거나 나를 아주 부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매도하는 때도 적지 않은데 나로서는 - 현실을 똑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숱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민족을 변호하고 옹호하려 드는 - 그들이야말로 아주 부정적이고 비겁한 자들일 뿐이다. 잘못을 시인할 때는 일 편의 변명도 뒤따라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소견이다.
2006.3.20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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