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an의 眞한 이야기/Jean의 眞한 이야기

왕란이 두 판에 오천 원? [3]

Jean2 2011. 5. 12. 15:58

한 번이라도 중국 여행을 (* 패키지 투어가 아닌 자유 여행으로) 해본 사람들은 피할 수 없던 숱한 불유쾌한 사건들을 나도 피해 가지 못했는데 그중 한 가지만 이야기하겠다.

 

하루는 일과를 마치고 호텔에 돌아오자 사무원 아가씨가 숙박부 비슷한 장부를 들고 와서 아무 설명도 없이 서명해달라고 했다. 꼼꼼히 확인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서명해서 보냈고 다음 날 아침 일찍 길을 나서서 해가 저문 후에 돌아왔는데 내 방에 청구서가 도착해있었다. 프런트 데스크에 전화해서 물어보니 간밤에 내가 한 서명은 '내가 (깨지 않은) 컵을 깨뜨렸다.'라고 시인한 서명이니 배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분명히 내 방을 청소한 하우스 키퍼의 소행이라고 추정해서 그녀를 불러오라고 호통을 치자 매니저가 달려왔다.

 

매니저도 처음에는 프런트 데스크의 직원과 같은 말을 하다가 내 언성이 높아지자 나름대로 조심스럽게 한다는 말이 오히려 도화선에 불을 붙인 꼴이 되었다.

"손님, 고작 5위안(* 당시 한화로 500원)짜리 컵 하나 때문에 이렇게 화를 내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물어주시기 싫으면 제가 변상할 테니 이제 고정하십....시오."

내 안주머니에 있던 지갑이 그의 얼굴을 향해 날아간 것은 그가 마침표를 찍기 전의 일이었다.

"뭐야? 사과는 하지 못할지언정 고작 5위안짜리 컵 하나 때문에 화를 낸다고? 이것이 너희 더러운 중국인들의 수법이더냐? 내가 깼다면 500위안이든 5,000위안이든 나는 물어주는 사람이다. 당장 내 방을 청소한 장본인을 데리고 와!"

"그녀는 이미 퇴근하고 없는데요."

"전화해서 불러오면 되잖아!"

"연락처를 모르는데요."

"너희 호텔 종사자 연락처를 모른다고? 좋다. 날이 밝는 대로 20개 신문사에 투고하겠다!"

매니저가 무릎을 꿇고 사과하기 시작했다.

"손님,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시면 저희 호텔문 닫아야 합니다."

"어림없다!"

"손님, 제발……."

 

다음 날 아침부터 호텔 전(全) 종사자가 내 방을 찾아와서 90도 절을 하고 나갔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그렇게 사흘간을 조석으로 내게 용서를 빌어서 - 컵을 깨고 내게 뒤집어씌운 장본인의 얼굴은 끝내 확인하지 못했지만 - 그들의 성의를 고려해서 한 번만 눈감아주기로 하고 증거물로 빼앗은 그 영수증을 그들이 보는 앞에서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며칠 뒤 체크 아웃을 하고 호텔을 떠나던 날 매니저가 문밖까지 쫓아와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다시 한 번 정중히 90도 절을 했다.

"손님 덕분에 큰 교훈을 배웠습니다. 다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없도록 온 힘을 기울이겠습니다."

 

(중략)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니를 모시고 모 유명백화점에 갔다가 계획에도 없던 조카들의 옷을 산 적이 있다. 진열대 위에는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 예쁜 옷들이 눈길을 끌고 있었고 '마진 포기 한 벌에 ₩5,000'이라는 안내판이 더 많은 사람의 시선을 집중시켜서 삽시간에 도깨비 시장의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패션 디자이너이기도 하셨던 어머니께서는 그중에서도 가장 디자인이 뛰어나고 박음질이 고른 옷들만 가려내시는데 그때마다 점원 왈, "그 옷은 5만 원입니다." "그건 6만 원이에요, 손님." "이건 신상품이라 10만 원입니다."

도대체 5천 원짜리 옷은 어디 있느냐고 성을 내자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는 볼품없는 옷가지를 가리켰다. '그러면 그렇지…….' 나는 체념을 하고 어머니를 모시고 그 자리를 뜨려 했는데 어머니는 당장 책임자를 불러오라고 명하셨다.

"아, 이 아주머니 정말 피곤하게 사시네. 장사꾼들이 원래 그런 거잖아요!"

옆에서 옷을 고르고 있던 다른 손님들마저 장사꾼들만 역성드는 상황이니 나는 더욱 무의미한 싸움이라 생각해서 어머니를 만류했다.

"엄마, 이것이 우리의 못난 민족성이라 바뀌지 않아. 그냥 가자."

어머니는 고개를 저으시면서 말씀하셨다.

"그래서 더욱 싸워야 하는 거야. 모두가 포기하면 세상은 절대 바뀌지 않거든."

어머니의 말씀이 옳았다. 당신의 고집대로 책임자가 달려와서 사과하고 가장 비싼 옷의 가격표까지 다 표시가 된 것을 확인하신 뒤에야 그 자리를 뜨셨다. 

 

(중략)

 

외국에서만 운전을 해왔던 나는 (* 간간이 조국에서 운전할 때마다 느끼는 점인데) 우리나라 운전자들은 모두 곡예사라는 생각이 든다. 운전 기술은 세계 1위인데 교통사고 발생률도 세계 1위라는 것은 '민족성' 때문이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부끄럽다. 폭소 클럽에서 스리랑카인(人) 행세를 하며 외국인 근로자들의 아픔과 설움, 잘못된 우리의 민족성을 웃기게, 그러나 날카롭게 지적해왔던 블랑카 씨의 말이 늘 떠오른다.

"차선을 변경하기 위해서 깜빡이를 켜면 뒤에 따라오던 차들이 더 속력을 냅니다. 한국에서는 깜빡이가 속도를 내라는 신호인지 알았습니다."

 

(중략)

 

부평에서 중화동까지 전철로만 꼬박 1시간 반이 소요되는 거리인데 나는 앉아서 간 기억이 거의 없다. 당연히 승객들의 하차가 우선이고, 하차가 끝난 뒤에 승차하는 것이 순서인데 그 질서를 지키는 승객을 거의 보지 못했다. 용산역에서 인천직통열차에 오를 때는 - 용산역이 기점이라 빈 열차가 도착하는데 - 내가 맨 앞줄에 서 있을 때도 앉을 기회는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숱한 얌체들이 새치기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나보다 허약하기 그지없는 자들이라 나는 - 자리가 텅 비기 전에는 - 앉을 생각을 하지 않지만, 외국인들의 지적이 부끄럽다. 누군가 내 비판에 대해서 '사람 사는 곳이 다 같지 않으냐?'라고 반박을 한 적이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남한이라는 이 작은 나라에도 강원도, 전라도, 경상도 사람들의 성격이 다 다르듯이 세계에는 나라마다 다른 민족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싶다.

 

(중략)

 

언젠가 어느 과외광고사이트에 내 광고를 올린 적이 있다. 보통 과외라 하면 대학생들이 하는 초ㆍ중ㆍ고생지도가 대부분이고 그들의 경력도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대학생ㆍ직장인 등 성인전문인 나는 그들보다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런데 한 번은 아주 못된 대학생 녀석이 내 광고 밑에 무례하기 짝이 없는 댓글과 함께 A-4 용지로 족히 3페이지는 될 만한 그의 대학 영작문 숙제를 올렸다.

"님이 그렇게 잘났으면 어디 이거 한 번 영작해 보세요. 님의 실력을 테스트해보게."

이런 존재들한테는 오직 무관심이나 무시가 가장 좋은 처방인데 한마디 충고를 한 것이 실수였다. 녀석의 되받아침도 문제였지만 내가 정말 실망하고 분노했던 이유는 녀석의 소행을 옹호하는 - 같은 족속들의 - 숱한 글들이 계속 올라오도록 어느 한 사람 바른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님, 정말 너무 하시네요. 솔직히 몰라서 님한테 영작을 부탁하는 건데 충고를 하시면 되나요? 님은 영어를 잘하시니까 우리의 고민을 모르시지만, 우리 같은 사람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답니다. 님이 우리를 당연히 도와주셔야 하는데 왜 화를 내나요?"

당시 회원 수가 3만 명이 넘었는데 그 많은 사람이 모두 비뚤어진 사고의 소유자들이었을까? 아니다. 그들은 그저 골치 아픈 일에 연루되고 싶지 않거나 체념을 했을 것이다. 월드컵 경기라면 똘똘 뭉쳐서 붉은 물결을 이루었을 그들이…….

 

왕란은 한 판에 오천 원이다.

 

 

 

2006.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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