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자 위에 나는 자가 있다는 진리를 모르는 愚者들이 범하는 실수 - 실제 대화 내용을 정리한 것임
호주 어학원 학생이 미국에서 건너온 영문학박사한테 하는 조언
"호주에 오신 지 얼마나 되셨는지요?"
"일주일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영어 공부 좀 하고 오셨나요?"
"아니오."
"좀 하고 오시지. 많이 답답하실 텐데."
"................."
"영어 공부는 이렇게 해보세요. 저는 호주에 온 지 5개월 되었는데 처음에는 TV를 무작정 보기 시작하다가...." (30분 경과)
"말씀 감사하지만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아니, 아직 제 말씀 끝나지 않았는데. 여하튼 영어 공부 열심히 하세요. 처음엔 힘드시겠지만 몇 개월 지나면 저처럼 할 수 있답니다."
캐나다에서 용접공으로 일하고 있는 노동자가 미국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온 청년에게 해주는 조언
"캐나다에 오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이제 한 달 조금 넘었습니다."
"음, 나는 1년 되었는데. 아직 외국생활에 대해서 잘 모르시겠군요. 외국생활이란...." (30분 경과)
"................."
"그런데 한국에서 대학은 나오셨소?"
"아니오."
"잘 되었군요. 배운 놈들은 힘든 일을 싫어해서 편한 일만 찾느라고 돈을 더 못 번다니까. 여기서 용접기술이라도 배워봐요. 당신은 배운 게 없으니까 아무 일이라도 잘할 거예요. 용접공은 영어를 잘 못해도 되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표현은 구사할 수 있어야 하니까 우선은 무료 어학원이라도 다니시면서...." (1시간 경과)
영국 호텔에서 근무하고 있는 - 고국을 떠난 지 10년이 넘은 - 한국인 직원에게 던지는 한국인 투숙객들의 우매한 질문
"요즘 한국 어때요?"
"네? 잘 모르겠는데요. 여기 오신 지 오래되셨나 봐요."
"네, 저는 3일 되었고요, 이분은 두 달이나 되었답니다."
돈을 벌고자 뉴욕으로 날아간 유타주 유학생이 구인광고를 보고 전화를 걸었을 때
"여보세요. 사장님 되십니까? 안녕하세요. 광고보고 전화 드렸는데요."
"네. 뉴욕에 오신 지는 얼마나 되셨지요?"
"뉴욕에 온 지는 두 달 되었는데요. 유타주 학생입니다."
"두 달이라…. 저희는 주 고객이 미국인이라 영어가 필요하거든요. 죄송합니다." (전화를 끊어버린 사장. 이 무지한 사장한테 유타도 미국땅이라고 설명해야 할까?)
미국 대학(원) 경력은 전혀 없는 한국인 강사진만으로 구성된 뉴욕의 한 한국인 어학원장이 유타대 휴학생한테 하는 제안
"한국에서는 어느 대학을 나왔나요?"
"한국에서는 대학을 안 나왔습니다."
"음, 그럼 학원 버스라도 운전해 주겠어요?"
자식의 초상을 치른 한 어머니를 위로하는 미혼여성
"얼마나 슬프시겠어요? 저도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한답니다."
"고마워요. 당신도 힘든 일을 겪으셨나 보군요."
"네, 저는 아직 미혼이라 자식은 없지만, 조카가 감기 몸살로 일주일을 앓아 누워 있을 때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울고 싶었죠.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지하 단칸방에서 노모의 병간호와 어린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자신의 몸은 돌볼 틈도 없이 분주히 살아가는 청년이 한 달 내내 중노동을 제공한 대가로 받은 임금을 소매치기당하고 절망에 빠져 있을 때 한 부유층의 인사가 그에게 하는 충고 (* 그 돈은 오래도록 병환 중에 있는 노모의 치료비를 충당하기 위해 빌린 거액의 사채에 대한 이자와 밀린 집세를 갚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액수였다.)
"난 당신이 잃어버린 액수와는 감히 비교도 되지 않는 귀한 보석을 외국여행 중에 잃어버리고 왔지만, 당신처럼 상심하지는 않았다오. 그러니 당신도 훌훌 털어 버리시고 마음 편히 지내시오. 행복은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오."
버스로 출퇴근하는 6개월 방위병이 10개월 만에 휴가를 나온 30개월 현역병한테 하는 조언
"나도 군대를 가보니 네 고충을 충분히 알겠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엊그제 입대한 것 같은데 벌써 제대 날짜가 다가오니 너도 잘 참고 버텨봐.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야 철이 드는 법이지."
고생을 모르고 살아온 재미교포와 가난한 유학생과의 대화
"이 친구 빨리 차를 사던가 하지 왜 걸어 다녀서 신경 쓰이게 해?"
"아직 형편이 안 돼서요. 등록금이 만 달러나 되다 보니 좀 어렵네요."
"무슨 등록금이 만 달러나 되나? 나는 2천 달러 내고 있는데."
"누님은 영주권자이시잖아요. 유학생 등록금은 그렇게 비싸답니다."
"그럼 악착같이 공부해서 장학금 받으면 되잖아. 3.4만 받아봐. (* 4.0만 점) 쉬운 점수는 아니지만 누나도 3.0은 넘기고 있어. 자네는 체력도 강하니까 목숨 걸고 하면 못할 것도 없지."
"유학생을 위한 장학제도가 없답니다."
"무슨 소리야? 내가 자네보다 미국생활을 더 했는데. 잔말 말고 3.4만 넘겨봐."
"사실 저는 4.0인데요."
"그런데 왜 장학금을 안 주나?"
"20년 전 얘기랍니다. 유학생한테까지 장학금을 주는 학교는 이제 거의 없고요, 타 장학재단에 신청해도 우선순위(미국인 우선)에 밀려서 신청비만 날리게 되지요."
"그래도 잘 사니까 유학 온 거 아니냐?"
"그렇지 않아요. 한국에 집도 없어요."
"뭐야? 한국에 집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자네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이야?"
남의 말은 참 쉽게도 한다. 위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위로에도 논리가 필요하고, 요령부득한 경우에는 침묵을 지키는 것만 못한 결과가 초래된다. 동병 이상의 고통을 겪어본 사람들은 작은 위로도 조심스레 하는데 더 조심성이 수반되어야 하는 큰 충고나 조언을 유사한 경험도 해본 적이 없는 이들이 서슴지 않고 토로한다. 사연이 없는 사람은 없겠지만, 사연의 많고 적음과 강약은 사람마다 다른 것이니 잘 알지 못하는 남의 얘기는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작년 3월 21일, (* 당시에는 심경을 옮길 여력이 없어서 11개월이나 지난 지금 정리를 하는데) 내겐 크고 작은 두 가지 경사가 있었다. 큰 경사는 10년 만에 신용불량자라는 무거운 굴레에서 비로소 벗어난 것이고, 작은 경사는 플래닛의 오늘의 멤버로 선정이 된 것이다. 신용을 목숨같이 여기는 내가 왜 신용불량자가 되었는지, 왜 오래도록 신용불량이라는 멍에를 쓰고 살아와야 했는지 사연을 듣고 나면 통탄하지 않을 이가 없을진대 그날 내게 친구신청을 해서 내가 수락했던 한 어르신은 내 기쁨을 다음과 같은 말로 짓밟았다.
"신용불량자인 줄 알았다면 친구 신청을 안 했을 텐데 실망이군요. 님의 화려한 경력만 보고 친구 신청한 건데…. 해외여행이나 다니시느라 신용불량자가 되셨군요. 그렇다면 용서해 드리죠. 뭐 나름대로 얻은 게 많으실 테니…."
훗날 그가 내 공개 다이어리 (* Jean의 眞한 이야기로 개명한 폴더)의 '극히' 일부분을 읽고 나서 사과했지만, 그가 무참히 깨어버린 그릇 속의 물은 이미 땅속 깊숙이 스며든 뒤였다. 공개 다이어리에 올린 내용은 사실 0.1%도 안 되는 사연에 불과하고 차마 다 공개할 수 없는 나머지 99% 이상의 아픔은 홀로 삭이고 있는데, 사과하면서 그가 범한 또 한 번의 실수는 - 0.1%도 안 되는 사연 속에 담겨 있는 - 내가 왜 신용불량자가 되어야 했는지는 읽지도 않고 또 임의대로 결론을 내린 글을 남긴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우는 그저 그를 친구목록에서 삭제하는 것이었다.
MSN 홈피를 관리하던 시절에는 - 내가 MSN 홈피 광고모델이 되면서 - 더 많은 굴욕스러운 사건들을 당했는데 (* 훗날, 자세히 그들의 만행을 폭로할 것이지만, 나를 사기꾼으로 몰아붙이던 사악한 언론인들과 권력집단이 있었다.) 내가 그렇게 '큰일'을 겪고 있을 때 '그까짓 일'이라고 일소에 부친 친구가 정작 본인에겐 아주 '사소한 사건'이 발생하자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그래서 남의 말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차림새나 젊어 보이는 용모, 체력 따위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10대의 진중한 어른도 있지만 50대의 철부지 어린아이도 있다. 더 우스운 것은 10대의 어른은 50대의 어린아이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를 이해하려 노력하는데 50대의 어린아이는 - 10대가 겪어온 끔찍한 고통, 가슴 아픈 경험, 그래서 어른스러운 사고(思考)에는 별 관심도 없이 - 10대의 어른 앞에서 (* 단지 세상을 더 살아왔다는 이유로) 어른 행세를 하는 것이다. 반대의 상황 - 즉, 10대의 철부지가 50대의 어른 앞에서 어른 행세를 하는 것 - 은 더욱 가관이다. 세상은 참으로 거대한 무대이다. 희극배우로 가득한…….
나는 태생 시부터 지금까지 평탄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지만 내가 최악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보통 사람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뼈아픈 삶을 살아왔지만……. 내 고통을 알아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다. Jean의 眞한 이야기를 모조리 읽어보고 이해한 사람이라도 - 나머지 99% 이상의 말 못할 사연은 내 가슴속에 숨어 있으니 - 그들의 처지에서 그들의 (* 편협한) 사고로 남의 삶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면 좋겠다.
유복한 사람에게도 고민이 있다는 사실은 안다. 그러나 그 고민이라는 것이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와는 무관한 형이상학적인 고민이라면 배고픈 사람에겐 마냥 행복한 고민이고, 배부른 흥정일 수밖에 없다.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이 아니고, 또한 배고픈 자에게는 그런 고민이 없다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생활고의 고통 위에 배부른 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고민까지 가중된다는 것이다.
무심코 발로 찬 돌멩이 하나가 무고한 개구리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글 한 줄, 말 한마디로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고 힘까지 실어주는 사람도 있지만, 상처를 입히는 사람도 있다. 상해를 입히는 살인만이 살인이 아니다.
2006.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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