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an의 眞한 이야기/Jean의 眞한 이야기

마지막 액땜의 날

Jean2 2011. 5. 11. 11:17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강도도, 살인자도 아닌 한 길 사람의 마음 속이다. 세상에서 가장 깊고 악취 나는 우물 역시 한 길 사람의 마음 속이다. 그건 강도나 살인자처럼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그 깊이 또한 측량도구로 측정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어서 언제, 어떻게 나를 파멸시킬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인격을 판단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그의 화난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다. 기분이 좋을 때의 양상은 강도나 성자나 별반 차이점이 없으므로 화가 났을 때의 언행만큼 그의 인격을 판단하기에 좋은 척도는 없다.

 

 

이런 폭언은 단순히 화가 났기 때문에 누구나 내뱉을 수 있는 사소한 말이 아니라 평소 그의 잠재의식 속에 깊이 내재하여 있던 흉악무도한 본색이 기회를 틈타 표출되는 것이다.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은 것이 그렇게 언짢았다면 전화를 끊기 전에 본인은 어떤 잘못을 범했는지 - 왜 전화를 끊었을지 인간이라면 마땅히 -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전화를 끊은 것이 100중 1의 잘못이라면 그녀는 내가 전화를 끊어버리기까지 이미 99의 잘못을 범했다. 내가 1의 결례를 범했다면 그녀는 99의 무례를 범한 것이다. 그녀의 사악한 이기심은 100중 100 내 잘못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혹자는 이런 유를 가리켜 인간쓰레기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인간은 쓰레기가 될 수 없다. 인간은 인간, 쓰레기는 쓰레기일 뿐이다. 인두겁을 뒤집어쓰고 있다고 해서 누구나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첫 번째 만남 이후 그녀는 듣기 거북한 질문을 이미 수차 던져왔다. 나는 그때마다 '아니다.'라고 분명히 답했다. 두 번째 만남의 자리에서 그녀는 다시 재삼재사 확인의 질문을 던졌다. 내 대답은 역시 '아니다.'였다. '백 번 천 번을 물어도 내 대답은 같을 것이다.'라고 분명히 전했다. 사람이라면 응당 알아들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 전화상으로 또다시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기 시작했다. 심히 불쾌했다. 순수한 사람이라면 남을 그렇게 집요하게 의심하지 못하는 법이다.


공개 다이어리를 읽고 나서 다시 물어보라고 말했다. 관심을 두고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따위 질문은 감히 할 생각도 못할 것이고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에 대해 사과를 할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에…. 그러나 내가 얼마나 감정을 자제하고 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 또한 그것이 내가 제공해준 마지막 기회라는 것도 전혀 깨닫지 못하고 - 내 요구를 무참히 뭉개버렸다. 두 번 세 번 같은 요구를 반복했지만, 그녀 역시 자신의 요구를 철회하지 않았다. 당장 읽어보라는 말도 아니었는데 당장 내 입에서 답이 나오기만을 기다릴 만큼 단세포적인 존재였다. 이 우둔하고 이기적인 자의 고집을 꺾을 방도는 없었다.


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 사과를 받아도 시원찮은데 - 욕설이 담긴 문자메시지가 발송되었다. 상상 외의 일이었다. 그러나 이 무례하기 짝이 없는 존재한테 나는 마지막 예의를 갖춰 - 극존칭까지 써가며 - 관계를 청산하자고 했다. 그러나 미친개한테 절을 한다고 대접을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내 분노를 억누르고 최대한의 예를 갖추고 있는데 이 광견은 나의 결례를 아주 무례하게 야단치고 있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어느 사자성어로, 어느 최상급 형용사로 이 표독함을 묘사할 수 있을까? 내가 만난 최고의 희극배우가 바로 이 존재였다.


밤새 한숨 잠도 이루지 못하고, 다시 밤 10시가 넘도록 식사도 한 끼 못하고 수업까지 강행해서 기진맥진한 상태였는데 이 희극배우의 심기 역시 편할 리 만무했나 보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플래닛부터 들어온 모양인지 다시 한번 나를 훈계하는 - 그녀는 자칭 오랜 수양을 쌓은 자로서 먼저 손을 내민 글이라 역설했지만, 그녀의 글을 읽은 3자들의 객관적인 평가 역시 건방짐이 하늘을 뚫는 - 오만무도한 글로 방명록을 도배하고 나갔다. 자신의 얼굴에 먹칠하는 행위임을 왜 모를까? 웃찾사나 개그콘서트도 나를 웃기지 못하는데 이 희극배우는 단번에 나를 웃기기에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있다.


내 성격도 다분히 다혈질이긴 하지만 적어도 나는 내가 범한 1의 잘못에 대해서 99마디의 사과를 먼저 할 수 있는 사람이고, 99의 잘못을 범한 사람으로부터는 단 한 마디의 사과로도 마음을 풀 수 있는 사람이다. 난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와 성격과 가치관이 전혀 다른 사람들과도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므로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한 발자국씩만 물러나면 누구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끼는 K라는 제자는 내가 알고 있던 만큼 그녀에 대해서 - 좋은 부분만 - 알고 있었다. 지난 9개월간 좋은 플래닛 친구, 카페 회원, 그리고 소중한 동생이라고 내가 늘 칭찬을 아끼지 않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형편없는 존재인 줄 알았다면 칭찬도 아껴둘 걸 그랬나 보다.


그녀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 조금만 인내할 수 있었다면 내가 범한 그 결례에 대해서 - 그녀의 무례함은 차치물론하고 - 오랜 시간이 지나기 전에 내가 먼저 사과했을 것이다. 그것이 진정 상급자의 자세이자 도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적어도 난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다. 또한, 하급자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하급자는 상급자를 나무랄 자격이 없다.

그녀에게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50통이 넘는 치욕스러운 문자메시지와 방명록의 건방진 훈계로 - 오냐오냐 마냥 떠받들어 키운 막내딸이라 더 방자하겠지만 - 조금이나마 미안했던 마음도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인간이기를 거부한 그녀를 인간목록에서 삭제해 버렸다. 인간이 아니라면 쓰레기일 뿐이다. 내가 만난 최고의 악질 희극배우이니 오늘이 2005년도의 마지막 액땜의 날이 되길 바랄 뿐이다.

 

"너희가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난 종교인이 아니라 이런 구절은 잘 모르지만 독실한 신자임을 자부하는 종교인들이 흔히 범하는 그릇된 행실은 잘 알고 있다. 종교인들이 괜히 지탄을 받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는 공부를 잘하거나, 운동을 잘하는 것이 아닌 바로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그건 내 의지와는 무관한 일이기 때문에…. 그러나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은 내 의지와 절대적으로 유관한 '내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일 것이다. 노력하자. 세상은 날 배신해도 난 세상을 배신해서는 안 된다.

 

2005.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