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an의 眞한 이야기/Jean의 眞한 이야기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을 수도 있지만

Jean2 2011. 5. 10. 19:05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을 수도 있지만 반면에 천 냥 빚을 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지각하는 이가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 같다. 인간의 언어는 단순한 의사표시의 차원을 넘어 감정까지 포함하고 있는 복잡 미묘한 것이어서 때로는 한마디의 말이 비수가 되어 어제의 '친구'가 오늘은 '원수'로 돌변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말실수로 말미암은 채무를 짊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사고방식을 소유하고 있는지, 또는 그에게 어떤 아픔이 있는지 사유(思惟)하는 능력을 키우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그>가 아니므로 완전한 역지사지란 사실 어려운 것이고, 따라서 정확히 판단을 내릴 수 없다면 차라리 침묵을 지키는 것이 <나>와 동시에 <그>의 인격을 모독하지 않고 상처를 주고받지 않는 현명한 처세술이다.

 

공개 다이어리를 읽고 나의 고통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사람들이 더 많은 진실을 알고자 관심을 두고 내게 다가오면 나는 기꺼이 내 시간을 할애해서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는데, 내 아픔을 보듬어주기는커녕 더 큰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인간이 창조한 언어는 표현하기에 따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중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그 반대의 것이 될 수도 있어서 신중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각인되는 치명적인 무기가 된다. 말이란 마치 그릇에 담긴 물과 같은 것이기도 해서 -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담을 수 없듯이 - 한 번 내뱉은 말을 되돌리기도 불가능한 것이니까….

 

연장자에 대한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 내 신조이기는 하지만 나는 '나이'의 많고 적음으로 인생 선후배를 정하지는 않는다. 오직 경험의 다소(多少)와 사고의 깊이로 구분할 뿐이다. 경험이란 것은 태어나고 성장해온 환경과 불가피하게 들이닥치는 기구한 운명 등과 같은 요인들에 의해 다분히 차이가 나는 것이기는 하지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시행착오를 더 겪는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나잇값을 하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오래도록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차이점을 분석해보면 전자의 사람들은 - 나이의 대소(大小)를 떠나서 - 우선 겸손하고 배려하는 방법을 안다는 것이다. 후자의 사람들과 같은 의미의 충고와 조언을 해준다 해도 그들은 '잘은 모르지만'으로 시작해서 '...인 것 같다.' 내지는 '내 생각은 이렇지만 혹 불쾌하면 미안하다.'라는 식으로 상대의 감정과 의사와 가치관을 존중해주므로 상처를 주는 일이 없다. 반면 후자의 사람들은 - 약간 과장되게 표현한다면 - '당신 생각은 무조건 틀리고 내 사고방식만이 옳다.'라고 말한다.

 

조쉬 빌링스는 "어떤 사람이 내게 충고를 바라면, 나는 그가 원하는 대답이 무엇인지 파악해서 얼른 그대로 말해줍니다."라고 했지만 나는 그들의 사견(私見)이 사견(邪見)이 아닌 이상 따끔한 충고와 조언이라도 - 내가 잘못한 것이라면 - 기꺼운 마음으로 반성하고 수락하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감언이설에만 눈이 먼 바보라고 함부로 속단을 내리거나 이기적이라는 표현을 남발하지 않기를 바란다. 모든 것은 상대적인 거니까….

 

2005.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