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확신할 수 있는 진실은 얼마나 될까? 양심을 운운하면서 가책을 받지 못하는 자만큼 비양심적이고 가련한 자는 없다. 누구나 실수를 범하고 살지만, 잘못을 저지르는 일보다 더 잘못된 일은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행위가 '잘못'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의 근본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이어서 -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개과천선하지 않는 한 - 한 번 배신한 자는 반드시 두 번도 배신한다. 진리는 어디로 사라졌나? 참 진리는 행방불명되고 거짓 진리가 난무한다.
나는 외국생활을 하면서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울 때가 아주 많았다. 세계의 창에 비친 Ugly Korea, Ugly Koreans라는 좋지 않은 평가는 내 민족이 저질러온 잘못에 대한 당연한 결과이므로 그들이 한국과 한국인을 비판하고 비난을 퍼부을 때마다 <나>는 고개 숙여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러나 많은 한국인이 그들에게 분노하고, 난 언제나 - 분노하지 않고 그들에게 사과한다는 이유로 - 내 민족으로부터 빈축을 사야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피해자인 그들보다 가해자인 내 민족에게 더 연민의 정을 느낀다. 내 가족이 밖에서 사고를 치고 와도 과연 나와 무관한 일일까? 우리나라처럼 '우리'라는 단어를 상용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는데 우리는 '우리'에 대한 책임감이 너무 결여되어 있다. 내 땅에 쓰레기를 버리면 우리 땅이 더러워지듯이 내 민족의 잘못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나는 특정한 종교집단에 - 피해자의 한 사람으로서 -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나와 내 가족, 내 이웃들이 오래도록 그들로부터 받아온 상처와 고통이 너무 크고 깊어서 그 종교인들과의 거리를 결코 좁힐 수 없다. 종교적인 비판 때문에 내가 심판대에 오르고 돌 세례를 당할지라도 그들의 비도덕적이고 비양심적인 행위들을 이젠 묵과할 수가 없다. 물론 모든 종교인이 다 그렇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지각 있고 양심 있는 소수 종교인이 타락한 종교를 바로잡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안다.
내가 그들에게 바라는 건 - 내 기준에서는 - 그리 큰 것이 아니다. 최소한 부끄러움을 알고, 반성하고, 각성하고, 같은 잘못을 재차 범하지 않도록 노력해 달라는 것뿐이다. 원수를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같이 사랑하지는 못할지라도 선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피해는 주지 말았으면 하는 것 정도뿐이다. 왼뺨을 맞으면 오른쪽 뺨을 내밀 수 있는 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완전무결한 사람은 없으므로, 또는 교리가 너무 엄격해서 지킬 수 없는 게 정당하다는 군색한 변명을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마태복음 5장 28절의 핵심은 '사람의 마음에 품은 음욕(淫慾)도 간음'이라 해서 혼전성관계는 십계명을 어기는 죄라고 목회자들은 해석하지만, 목회자들부터 이 계명을 지키지 않고 죄의식을 느끼는 개신교도들을 단 한 명도 만나본 적이 없다. 자기 합리화에 익숙해져 있는 세상이라지만 아닌 것은 아니다. 절대로 안 된다고는 나도 말하지 않는다. 외눈박이 나라에서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있는 자가 병신취급을 받고 소외되는 고통을 몸서리치도록 겪어왔기 때문에……. 하지만 그것이 정당한 관계라고는 주장할 수 없고, 계명을 어기면서까지 사랑을 할 때에는 더 큰 책임감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 내 소신이다.
나는 어떤 종교에도 몸을 담고 있지 않지만 내 철학이 있고, 작은 실수에도 큰 부끄러움을 느껴서 하늘을 올려다볼 낯이 없는데 그들은 궤도를 크게 벗어나고도 감히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말한다. 연민의 정을 느낀다. 용서는 신이 해주는 것이라 그들은 주장하지만 나는 그들을 용서하련다. 그들은 그들이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 진정 모르고 있기 때문에…….
2005.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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