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독이 바닥을 드러내서 참으로 오랜만에 쌀을 주문했다. 어머니의 뱃속에 몹쓸 복수가 들어차면서부터 식사를 못하시게 되었고 나도 식욕을 잃어서 그동안 쌀이 불필요한 식량으로 전락해 있었기 때문이다.
재래시장에 가서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던 손두부와 옥수수도 샀다. 지척에 Lotte Mart가 있는데도 한 푼이라도 절약하시고자 도보로 30분 거리나 떨어진 곳에서 무거운 장바구니를 몇 개씩 짊어지고 오셨던 분이다. 내가 조국에 있는 동안에는 어머니의 그림자 역할을 해왔지만, 강산이 변하도록 어머니의 품을 떠나있던 긴 세월 동안 홀로 짊어지셨던 짐들의 무게는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저울로도 헤아릴 수 없으리라.
오래전 내가 미국 유학을 떠나기 직전에 어머니와 함께 청계천의 한 노점에서 만 원짜리 시계를 산 일이 문득 떠오른다. 그날 내 손목에는 값비싼 시계가 감겨 있었고, 가난한 집안의 아들로는 보이지 않을 고급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또한, 양손 가득 들고 있던 샤핑백들 속에는 두 켤레의 여분과 부잣집 아들로 보이기에 부족함이 없을 가죽 재킷이 세 벌이나 들어 있었으니…. 만 원짜리 시계의 주인은 내가 아닌 '어머니'였다.
"언제부터 사고 싶었는데…. 소원 성취했다." 미소를 지으시면서 마치 귀한 보석이라도 얻으신 듯 싸구려 시계를 만지작거리시면서 좋아하시던 그 모습을 난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그렇게 살아오셨으면서 자식들을 위해서는 무척이나 헌신적이셨다.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날아가는 내내, 그리고, 미국땅에 도착한 이후에도 계속 - 좋은 시계 하나 사드리지 못하고 왔다는 - 죄책감이 날 괴롭혔다.
그래서 더욱 목숨을 걸고 공부에 전념했고 훗날 우리 집안을 몰락시킨 배은망덕한 인간들 때문에 학업이 중단되던 순간까지 난 최고점수를 놓치지 않았다. 학기가 끝날 때마다 전 과목 만점짜리의 성적표를 어머니께 보내드렸던 그 시절만큼 나 자신이 대견해 보였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 공개 다이어리를 - 아직도 행방을 알 수 없는 - 그들 중 한 사람이라도 보게 되어서 어머니의 영정 앞에서 사죄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2004.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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