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an의 眞한 이야기/Jean의 眞한 이야기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삶

Jean2 2011. 5. 8. 21:34

MSN 홈피 관리를 시작한 지 이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많은 친구가 생겼다. 그 중  ひろみ(Hiromi)라는 일본 가수는 내게 특별히 관심을 두고 1:1 메신저 대화를 신청해왔다. 내가 사진을 올릴 때마다 '부럽다.' 내지는 '멋있다.'라는 내용의 꼬리 글들만 숱하게 올라왔는데 오직 한 사람, 즉 그녀는 무표정한 내 사진들을 보면서 심상치 않은 삶임을 직감한 것이다. 그녀의 예상은 적중했고 우리의 대화는 장시간 계속되었다.

 

특히 캐나다 사진 밑에는 '단돈 20달러 들고 도착해서 (* 정확히는 $21이었지만) 2년을 살았다.'라는 간략한 스토리까지 적어 놓았는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낭만적인' 삶을 사는 내가 '마냥 부럽다.'라는 댓글들을 올려놓았다. 하긴 나 자신도 믿을 수 없는 참으로 기막힌 세월을 살아왔는데 그 긴 스토리를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호주에서의 첫 3개월 동안은 굶는 게 일이었다.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중노동을 하다 보니 대낮에도 별을 보면서 일해야 했고,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썩은 과일들을 봉지에 주워담아 식사를 해결하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호텔에서 일자리를 구했을 때는 - 부끄러운 얘기지만 - 손님들이 먹다 남은 빵과 우유 등을 몰래 훔쳐먹기 시작했다. 새 빵과 우유는 아니었지만 태어나서 처음 배운 도둑질이라 하늘을 올려다볼 낯이 없었다. 어쩌다 얻어먹을 기회가 생기면 폭식을 해서 내 체중은 시시각각 줄기와 불어나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몇 달 전에도 내 '여행기'를 - 여행기라기보다는 '생활기'라는 표현이 적절하겠지만 - 무척이나 듣고 싶어했던 한 아가씨와 오래도록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한참 동안 내 스토리를 듣고 난 뒤에 그녀가 던진 질문은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그녀에게는 그동안 다른 사람들한테는 들려주지 않았던 '노숙' 이야기까지 공개했는데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내가 더는 누구에게도 쉽게 말문을 열지 않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렇게 힘든 생활을 하실 때마다 그 생활을 '포기'하고 조국에 돌아오고 싶은 마음은 없었나요?" 여전히 그녀는 내가 '체험 삶의 현장'이나 '도전 지구탐험대'에 출연한 배우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리라.

 

혹자는 여하튼 내 용기가 부러워서 자신도 조만간 체험 길에 오르겠다는 말을 했는데 며칠 몇 달 누군가의 삶을 모방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실제로 호주에 있을 때 고생을 사서 하기 위해서 건너온 한 부유층의 사람이 있었다. 무일푼으로 왔다지만 여차하면 사용할 수 있는 (내게는 없는) 신용카드가 그의 안주머니에서 그를 든든히 지켜주고 있었고, 언제든 그가 원할 때 (내게는 없는) 조국의 안식처로 돌아갈 수 있는 몸이었는데 그는 자기 삶과 내 삶이 동등하다고 주장했고 - 수개월이 지나도록 끝내 신용카드의 힘을 빌리지 않고 '맨주먹으로' 생활해온 것을 자랑스레 여기며 - 마치 내 고통을 모두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알은체했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활해온 그를 '존경'했지만, 내게는 그가 도전 지구탐험대에 출연한 배우에 그치지 않았다. 기름진 뱃살을 빼기 위해서 고의로 식사량을 줄이거나 굶는 고통과 가진 게 없어서 먹지 못하는 고통을 어찌 비교할 수 있을까.

 

그의 소중한 체험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사고는 분명히 겸손하지 못했다. 스스로 선택한 생활이라면 - 일정 기간 누군가와 똑같은 생활을 해왔을지라도 -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삶의 고통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

 

2004.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