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an의 眞한 이야기/Jean의 眞한 이야기

캐나다 생활 2

Jean2 2010. 6. 11. 15:34

 

창이 없어 환기도 되지 않는 깊고 어두운 지하주차장에 짐을 풀었다. 그래도 좋았다. 새벽이슬을 피할 수 있어서 좋았고, 촌음의 시간이라도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기쁘게 했다. 졸업을 코앞에 두고 학업이 중단된 지 3년…. 하루빨리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

 

호주에서 날아오는 데만 꼬박 이틀이 소요되고 시차 적응도 안 되어 몹시 피곤했지만, 하루는 쉬라는 사장의 배려를 마다하고 팔을 걷어붙였다. 일이 너무 고되 녹초가 되다가도 숙소인 지하주차장에만 도착하면 생기를 되찾아 공부할 수 있었고 이른 새벽의 체력단련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렇게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생활했지만….

 

 

탑을 세우면 거센 폭풍이 달려와 무너뜨리고, 더 공을 들여 다시 세우면 더욱 강력한 절망의 폭풍이 사정없이 휩쓸고 지나가기를 반복했다. 하루하루 달력에 동그라미를 치며 간절히 기다렸던 어머니의 출소를 전해 들었지만, 어머니의 목소리 대신 '말기 암 진단을 받으셨으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라는 잔인한 사형선고를 함께 전해 들었다. 그렇게 간절히 기다렸던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기까지 다시 일각이 여삼추와 같은 시간을 인내하며….

 

일을 더 했다. 내 몸이 부서져 가루가 되더라도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했다. 밤마다 호텔에 출근해서 중노동을 하고 아침에 퇴근하면 1시간 반의 짧은 수면을 취하고 나서 출장지도하러 다녔다. 학생 수는 점점 불어나는데 마땅한 수업 장소가 없어서 애를 먹었지만,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 마침내 내 명의의 아파트를 얻어 눈치 보지 않고 수업에 전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까지 - 감당할 수 있었다. 아침에 퇴근해서 다시 저녁에 출근할 때까지 내가 또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호텔 종사자들은 전혀 몰랐고, 마지막 수업을 마치자마자 허겁지겁 달아나는 내가 어디를 향해 달려가는지 또한 제자들도 한동안 몰랐다.

 

처음 10개월 동안 하루 평균 수면시간이 1시간 반이었는데, 말 많고 의심 많은 사람들은 나 자신도 믿을 수 없던 그 지옥 같은 상황을 믿어줄 리 없었고, 내 진실을 여과 없이 받아들인 때 묻지 않은 영혼의 소유자들은 내가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난 지극히 보통 사람이었다. 끼마다 진통제를 두 알씩 복용하지 않으면 수면부족으로 나를 괴롭히는 지독한 두통과 안통을 극복할 수 없었고, 1시간마다 안약을 점안하지 않으면 충혈된 눈을 위장할 수 없었던…….

 

미국유학시절에도 텅 빈 냉장고를 열어보고 내가 뭘 먹고 사는지, 매일 외식을 하는지 미국 친구들이 참 궁금해했는데, 캐나다에서의 빈 냉장고 역시 제자들에게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호텔에서 간단한 음식이 제공되어 출근과 동시에 주린 배를 채우고, 퇴근할 때 챙겨오는 식빵과 잼으로 다시 날이 저물어 출근할 때까지 버텨야 하는데 어쩌다 음식을 챙겨오지 못하면 굶었다가 출근해서 폭식을 해버리니 끼마다 복용하는 진통제와 더불어 불규칙한 식사는 위장병을 부르고야 말았다. 그래도 어머니만 살아나실 수 있다면, 어머니께서 해주시던 따뜻한 밥과 맛있는 반찬을 다시 먹을 수만 있다면 더 모진 고통도 견딜 수 있었다.

 

1998.5.7~1998.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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