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많은 호주생활을 접고 캐나다를 향해 몸을 띄웠다.
캐나다 스토리를 전개하기 전에 6개월간의 호주생활을 전·후반전으로 요약하자면 전반전인 처음 3개월 동안은 굶기를 밥 먹듯 했고, 후반전 3개월은 빚 갚는데 에너지를 다 소모한 기간이었다. 도착도 하기 전에 안고 날아간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만 갔고, 마지막 미소마저 탈취당한 무표정한 얼굴로 사람들을 대하면 - 내 의지와는 반대로 - 소외당하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뉴욕에서 호주로 떠나기 전에 진 빚과 호주에서 불어난 산더미 같은 빚까지 다 청산하고, 캐나다행 비행기표까지 예약하고 나니 남은 액수가 총 2달러였는데, 그 돈으로 캐나다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때까지 버텨낸 보름이 마치 15년 같다. 후반전에는 그나마 안정적인 수입을 얻어 그 많던 빚을 다 갚을 수 있었지만, 남의 일을 임시로 얻어 한 것이어서 출발 보름을 남겨놓고 내주어야 했다. 보름만 더 일할 수 있었다면 캐나다 생활도 그리 음울하게 시작되지는 않았을 텐데 운명의 수레바퀴는 내 작은 소망을 잔인하게 뭉개버렸다.
하루 방값 14달러와 식사비까지 근 30달러가 매일 필요한 액수인데 2달러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전화비도 되지 않으니 살아남기 위한 도박에 승부수를 던졌다. 보통 사람들보다는 조금 빨리, 그리고 오래 기억하는 내 능력을 활용해서 도박장의 slot machine 프로그램을 외우기 시작했다. 한 기계 앞에 꼬박 5시간을 서서 암기한 다음 전 재산인 2달러를 넣고 하루에 필요한 액수인 30달러를 따냈다. 그렇게 보름을 도박으로 연명하고...
캐나다에 도착했다. 당시 조국은 IMF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 약소국으로 전락해서 한국인은 한국인 전용 입국심사대에서 심사를 받아야 했는데, 철저한 짐 검사뿐만 아니라 돈 검사까지 받고 나서야 - 무비자로 입국해서 6개월을 체류할 수 있는 스탬프를 받고 현지에서 6개월을 더 연장하면 1회 최대체류기간이 12개월이 되었던 이전의 협정은 깨지고, 1천 달러당 한 달, 즉, 돈의 액수에 따라 찍어주는 체류기간이 다른 - 스탬프를 받아낼 수 있었다. 같은 시기에 입국한 어떤 이에겐 300달러밖에 없다는 이유로 3일만 체류할 수 있는 도장을 찍어주었다. 그러니 200달러도 아닌 20달러가 전부였던 내가 이민국을 빠져나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구나 무비자로 입국하는 나라는 이민국에 왕복항공권을 제시해야 통과가 되는데 나는 편도표로 날아갔으니…. 재심대까지 불려가서 이민관의 입을 봉쇄하고 마침내 최대체류기간의 스탬프를 받고 나오기까지 장장 40분간 펼쳐진 한판 대결은 연출도, 낭만도 아닌 - 살을 깎는 고통이 수반되는 - 내 참담한 현실이었다.
199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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