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戰場)에서 적군과 싸우던 병사가 창이 부러지자 부러진 창을 버리고 달아났다. 그런데 무기가 없어 고전하던 왕자는 그 부러진 창을 집어들고 적군을 쓰러뜨렸다. 누구에겐 부러져 쓸모없는 창이 누구에겐 적을 물리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고교동창 중에 나보다 몇 달 먼저 미국으로 날아간 친구가 있었는데 결혼은 죽어도 하지 않겠다던 독신주의자 녀석이 미국에 도착한 지 두 달 만에 미국시민권자 한국인 아가씨와 결혼해서 쉽게 영주권을 얻었다. 나는 학업이 중단되던 날까지 미국인보다, 아니, 미국인과 동등하게 모든 혜택을 누리는 영주권자보다 4배나 많은 등록금을 내며 학교에 다녔고 국제학생이라는 이유로 장학혜택 한 번 받지 못했는데(* 3,500개 대학 중에 공식적으로 국제학생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학교는 5개밖에 없다.) 그가 내게 한 말은 이러했다. "영주권 받고 보니 별거 없더라. 세탁소 아르바이트나 하고 있으니."
뉴욕에서 불법체류하고 있을 때 (* 학생비자로 학교를 안 다니면 바로 불법체류자가 되므로) 당시 클린턴정부가 불법취업자와 체류자를 대거 색출하고 있던 시기라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었다. 내게 '부러진' 창만 있었다면 굳이 뉴욕으로 날아가지 않고도 유타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었는데... 웃기는 교포사회에서는 '온전한' 창을 요구했다. 특히 시카고에 사는 내 초등학교 동창 녀석이 그러했다.
몇 해 전 위암으로 세상을 등진 34년 친구가 당시 내 소식을 접하고는 바로 시카고에서 나이트클럽을 두 개나 운영하는 반갑지 않은 그 녀석한테 도움을 요청했다. 시카고에서 뉴욕으로 전화가 왔는데 내게 열등의식을 품고 있던 녀석답게 자기 자랑을 두 시간 이상 늘어놓더니 한 시간 동안 나를 질책했다.
"정신 나간 친구야, 형편이 어려우면 파트타임으로 학교 다니고 아르바이트하면 되잖아! 왜 풀타임으로 다녔니?"
유학생은 풀타임으로 등록하지 않으면 불법체류자가 되는 사실을 영주권자들은 모른다. 풀타임으로 학교에 다니면 아르바이트를 할 시간도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른다. 유학생에겐 졸업할 때까지 취업 허가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그들은 모른다.
* 물론 교민밀집지역에서 유학하는 학생들은 파트타임으로라도 어렵지 않게 몰래바이트를 해왔고 하고 있다. 교민이 없는 유타주에서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던 유일한 몰래바이트는 피아노 레슨이었지만, 식비와 자동차 개스를 간신히 충당할 수 있는 수입밖에 되지 못했다.
"영주권은 있니?"
"내게 영주권이 있다면 뉴욕으로 날아오지도 않았다. 청소부 자리라도 좋으니 도와다오."
"도움을 받으려면 신분이나 해결하고 나를 찾아라. 영주권 받아오면 청소부 자리는 주지."
'공부를 워낙 못하던 녀석이니 시민권자이면서도 대학을 못 나온 친구. 이런 식으로 보복하는구나.' 원래 좋아하지도 않던 녀석한테 심한 굴욕을 당했으니 녀석을 두 번 다시 볼 일이 없어졌다.
외국에 '돈 없이' 날아가서 정착하고 성공한 사람 중 99%는 현지에서 결혼으로 신분을 해결한 사람들이고 1%는 영주권을 쉽게 신청하고 취득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다. 특히 미국은 청교도국가라 목회자라면 100% 해결된다. 뉴욕에서 내게 도움을 준 전도사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사 영주권도 주시고, 자동차와 집도 주셨다.'고 말했지만, 목사는 영주권 신청 후 6개월 안에, 전도사는 1년 안에 영주권을 내주는 나라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캐나다에서 불법체류하면서 불법취업으로 불이익을 당하고 있을 때, 같은 직장에 몸담고 있던 - 영주권을 안고 날아와서도 나와 같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던 - 교포도 위에서 언급한 고교동창과 똑같은 말을 했다. "영주권, 그거 별거 없더이다."
내가 한 나라에 정착하지 못하고 나라를 옮겨 다녀야 했던, 그래서 살아온 나라 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던 이유 대부분은 장기체류할 수 없는 '관광객' 신분이기 때문인데 한 미국시민권자는 '치앙마이에만 7개월을 있었다'는 내 글 밑에 '누구는 미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사는데 누구는 세계를 누비고 있으니 인생이 참 불공평하다'는 댓글을 달았다. 또 다른 미국시민권자는 자신도 미국에서 대학을 중퇴했으니 내 아픔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이해할 수 없는 글을 남겼다.
"미국에서 사셔도 성공하실 분인데 미국에서 사실 생각은 없나요?" "미국으로 오시지 그래요?" "미국에서 사세요."
에피소드를 읽고 많은 교민이 내게 메시지를 보내왔는데 나를, 그리고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어려운 사람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을 나는 이해하지만, 그들이 내 상처에 뿌리는 소금은 참 고통스럽다.
저 건물에 들어가야 하는데 경비가 가로막으며 말한다.
"통행증이 있어야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통행증은 어디서 구할 수 있습니까?"
"저 건물 안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럼 들어가서 통행증을 구하겠습니다."
"들어가시려면 통행증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내 꿈이 시작되고 중단된 나라 미국. 내가 뿌리내리고 살고 싶었던 나라는 그 나라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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