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여행전문가 한비야 씨는 세계에서 한국인들이 (외국여행을) 가장 못 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녀가 지적하기 전에 이미 많은 여행전문가가 그렇게 느껴온 거지만...
대학생들은 매년 여름방학, 겨울방학을 이용해서, 직장인들은 휴가철에 유럽이나 동남아시아로 자유 배낭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그들 중 대부분이 한국인 민박집에만 투숙하고 하루 2끼 이상을 한식으로 배를 채우고, 한국인들과 어울려 다니며 열심히 풍경 사진을 찍어온다. 구경해보지 못한 세계를 밟아본다는 차원에서는 여행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수박 겉핥기 여행에 그친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행의 참 목적은 새로운 언어와 문화, 음식 등을 체험하는 것이므로...
내가 처음 유학을 시작했던 유타주에서는 한국인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국인이 없으니 한국인수퍼나 식당도 없었고, 김치가 먹고 싶으면 비행기를 타고 LA까지 날아가야 했다. Las Vegas에 한국인수퍼가 몇 개 있는 건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남북한의 1.5배나 되는 면적인 유타주를 벗어나는 것도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유타주에서 처음 5개월은 미국인 가정집에서 하숙했는데 식성이 좋아 어느 나라 음식도 곧 적응하는 내게도 가끔은 매운 음식이 필요해서 고춧가루 대신 후춧가루를 반 통씩 부어 먹기도 했다.
어느 순간 환경이 바뀌어서 내 주위엔 미국인밖에 없다는 사실이 한동안은 날 설레게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김치가 미치도록 먹고 싶은 만큼 '우리말'도 끔찍하게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때의 고독감을 난 '절대 고독'이라고 표현했다. 우리말이 듣고 싶어서, 우리말이 하고 싶어서 내가 생각해낸 방법은 소형카세트플레이어를 하나 장만해서 우리말을 하고 싶을 때마다, 우리말을 듣고 싶을 때마다 내 육성을 녹음해서 틀어놓고 듣는 거였다. 할 말이 없어서 국기에 대한 맹세를 녹음한 적도 있었다. 시간이 더 지나면서 그런 일도 불필요해졌다. 나도 모르게 감탄사도 영어로 튀어나오고 잠꼬대마저 영어로 하게 되면서 그들과 동화되어 갔으니...
매일 주어지는 숙제와 매주 시행하는 시험이 감당하기 벅찰 만큼 많아서 늘 시간이 부족했지만, 성적은 기대 이상으로 잘 나왔다. 시험 범위가 60페이지라면 밤새 30페이지를 공부하고 나머지 30페이지는 1시간 안에 속독으로 해결했지만, 시험 운이 좋아서 'Mr. 100%, Mr. Genius, Terminator' 등 많은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마무리를 할 수 없는, 그래서 그것이 평생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불운이 다가오고 있었다.
<중략>
뉴욕에 있을 때 지인의 소개로 뉴욕에 있는 한 한국인어학원을 찾아간 적이 있다. 원장과 면담하기 전에 강사진의 프로필을 살펴보았는데 모두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출신이었다. 내 비록 졸업장이 없는 약점이 있었지만, 미국에서 공부하지 않은 그들보다는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어느 대학을 나왔나요?"
"한국에서는 대학을 안 나왔습니다."
"음, 그럼 학원 버스라도 운전해 주겠어요?"
뉴욕의 하늘은 어두웠지만, 그래도 절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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