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이 시작된 지 며칠 되지 않은 자두 농장을 찾았다. 그동안 숙소를 세 번 옮겼고 이동 과정에서 모두의 돈이 바닥났다. 이 주변에서는 Backpacker's를 찾을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하루 $55나 하는 모텔에서 세 명이 투숙해야 했는데 마음씨 좋은 주인장이 우리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하고 $5를 할인해주었다. 그래도 당장 일을 시작하지 않으면 노숙을 해야 할 처지라 아주 다급한 상황이었다.
모텔에서 자두 농장까지 걸어서 찾아갔는데 대략 2시간은 걸어간 것 같다. 일꾼들을 잠재우기 위한 캠핑차량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옥외 수영장까지 딸려 있는 비교적 부대시설이 좋은 농장이었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한국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 - 그날 일을 나가지 않은 사람들 - 이 모두 한국인들이었고, 그들 말을 들어보니 이 농장의 일꾼 중 70% 이상이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Orange City 농장의 캠핑카는 임차료가 두당(頭當) 일주일에 $20였는데, 이 농장은 $70나 되었다. 그래도 하루 $50가 넘는 모텔보다는 싸서 당장 숙소를 옮겨야 하는데 문제는 남아있는 캠핑카가 없어서 일주일치를 선급(先給)하고 누군가 농장을 떠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일행이 3명이니 3명이 농장을 떠나야만 캠핑카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인데 우리에겐 당장 $210가 없다는 것이 더 문제였다.
(다음날)
새벽 일찍 일어나 모텔에서 식빵과 잼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자두 농장으로 향하는 트럭을 잡기 위해 길목을 사수하고 있었다. 6시가 되기 전에 한 떼의 일꾼들을 싣고 달리는 트럭을 발견했고 무리 없이 올라탈 수 있었다.
체리나무의 높이도 평균 11m나 돼서 개인마다 사다리를 받았는데 자두나무도 거의 같은 높이여서 우리 팀은 3개의 사다리를 받았다. 하지만 나는 -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 우리 중 한 사람만 사다리를 타라 지시했다. 나보다 키가 작은 남학생한테는 바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위에 매달린 자두만 수확하라 지시했고, 여학생은 밑에서 손이 닿는 높이까지만, 그리고 내 키가 제일 크니 나도 내 손이 닿는 부분까지만 수확하게 되면 한 사람만 사다리를 타고도 한 나무의 자두를 모조리 거둘 수 있었다. 그리고 수확한 - 한 자루에 10kg씩 나가는 - 자두를 들고 사무실 앞 저울까지 달려가서 무게를 체크하는 일과 나무를 옮겨갈 때마다 같이 옮겨가야 하는 무거운 사다리도 내가 맡았다. 그렇게 일사불란하게 일한 덕분에 따로따로 일하는 다른 3명의 일꾼이 3그루의 나무를 수확하는 동안 (3명으로 이루어진) 우리 팀은 같은 시간에 적어도 4그루 이상의 나무들을 정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첫날부터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30%가 채 안 되는 백인 중 대다수가 수확을 하다말고, 즉 낮은 높이에 매달린 손쉬운 열매들만 거두고는 새 나무로 옮겨가고 있었는데 (* 체리 농장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단 하나의 열매라도 남아있으면 나무를 옮겨갈 수 없다.) 그 사실을 알고도 눈감아주는 것인지 농장주는 한국인들만 감시하고 한국인들한테만 잔소리를 퍼붓고 있었다. 참다못해 내가 나서서 바로 내 눈앞에서 얌치 행위를 벌이는 자들을 농장주한테 직접 지적해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농장주는 그들의 파렴치한 행위는 묵인하고 그들이 수확하다가 만 나무들을 모두 한국인들한테 맡겼다. 우리 팀도 예외가 아니었다. 확연히 드러난 인종차별…. (* 관광객이나 유학생의 신분으로는, 그리고 교포사회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호주의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언급하겠다.)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무게를 측정하고 (그들이) 수확량을 기록하는 것이 다소 미심쩍어서 확인해보니 무려 20kg이나 차이가 났다. 사람의 일이라 실수가 있을 수 있겠지만 2kg의 차이도 아닌 20kg의 차이는 수긍할 수 없는 문제라 항의를 하자 농장주가 달려왔다. 나는 우리 팀이 8kg의 수확량을 올리는데 소요되는 시간과 마지막 무게가 정확히 얼마였다는 설명과 함께 사라진 20kg의 보충을 요구했는데 농장주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일하기 싫어? 그럼 떠나!"였다. 나는 당장 떠날 테니 지금까지 일한 것에 대한 임금을 당장 내놓으라고 호통을 쳤다. 농장주는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네 마음대로 그만두고 떠나는 것이라 임금은 줄 수 없다!" 나는 내 큰 눈을 더욱 크게 부릅뜨고 더욱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래? 그렇다면 시드니로 내려가서 법적 소송을 제기할 것이다. 두고 봐라!"
고소문제가 언급되자 농장주가 꼬리를 내리고 결국 임금은 지급해주었지만 나는 농장주보다 오불관언이었던 한국인들한테 더 분노했다. 내가 혼자서 전쟁을 치르는 동안 어느 한국인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나를 만류했다.
"저기요,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니까 웬만하면 참고 일해요."
"우리는 힘없는 한국인이잖아요."
"저는 영어가 안 돼서…."
"저는 돈이 필요해서…."
"우리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은 알지만 어쩔 수가 없잖아요."
이렇게 그들의 변명도 가지각색이었다. 그곳에는 분명히 70%가 넘는 한국인이 일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나를 도와 일제히 들고일어나면 - 열대지방에서는 수확시기를 일주일만 놓쳐도 막대한 손해를 입기 때문에 - 우리의 권리를 찾는 것은 시간문제였는데…. 어쩔 수 없는 민족성인가? 나의 사고가 잘못된 것인가? 내가 농장을 떠날 때 나를 똑바로 바라본 한국인은 아무도 없었다. (* 2달이 넘게 이 사건은 진이라는 한국인과 호주 농장 측과의 대전쟁이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닌 전대미문의 사건이 되었고, 훗날 그들 중 한 사람이 내게 - 나와 싸움을 함께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 사과를 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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