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내리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속을 걸어라
갈대 숲 속의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가끔 하느님도 눈물을 흘리신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산 그림자도 외로움에 겨워
한 번씩은 마을로 향하며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서 우는 것도
그대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그대 울지 마라
- 정호승 -
외로운 이가 많은 가 보다. 억울한 이도 많은 가 보다. 요즘은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내게 다가와 넋두리를 늘어놓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다. 며칠 전에는 만취한 노동자가 한참을 횡설수설하고 가더니, 오늘은 또 다른 낯선 이가 다가와 자신의 불운을 탄식했다.
"하, 하, 학생."
"네? 저요?"
"그, 그, 그래요. 하, 학생. 어느 하, 학교 다녀요?"
성북역에 앉아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그런데 학생이라니, 얼마나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인지…. 7년 전 그러니까 2002년도 세브란스에서 어머니 병간호를 하고 있을 때가 마지막이었는데. 어머니 침대 옆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내 책들을 보고 - 나를 학생으로 판단한 - 많은 이들이 한마디씩 했었지. "학생이라 책이 많구나." "학생 전공이 뭐예요?" "학생도 이 학교 다니나?" "내가 누나뻘 되니까 말 놓아도 되겠지?" 그러나 내 나이도 묻지 않고 하대를 했던 그녀는 내 동생보다 어린 사람이었다.
"아, 저 학생 아닌데요."
"그, 그래요? 나, 나, 나이가?"
"마흔이 넘었습니다."
"허, 헉! 그, 그, 그렇게 아, 아, 안 보이는데. 나, 나, 나는 피, 피, 필드 하, 하키 서, 선수였는데…"
"아, 그러셨어요?"
"… 겨, 겨, 경기 주, 중에 사, 사고를 당해, 뇌, 뇌, 뇌진타탕을 일으켜, 켜서, 마, 마, 말을 더, 더듬어요."
"아, 저런…"
"나, 나, 나는 저, 저, 정말 어, 억, 울, 해, 요. 주, 주, 주장 서, 선수여, 였는데…"
가슴이 미어져 왔다. 힘들게 내뱉는 한 단어 한 단어가 한 문장을 완성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바로 자리를 뜨지 못하고 한참 동안 그의 푸념을 듣고 있었다. 영원한 부(富)도, 영광도, 건강도, 사랑도 없는 것을….
2009.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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