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지금의 내 나이가 되시기 훨씬 이전에 5군단 비행대장으로 복무 중이셨다. 열다섯에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오셔서 열아홉에 육군 소위로 임관되셨고 바로 조종사가 되고 싶으셔서 다시 독학으로 항공학과 영어를 공부하시고는 그 꿈을 이루셨다. 아버지의 어린 시절, 청년 시절 역시 가난이라는 고약한 친구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녀서 그 모든 과정을 고학과 독학으로 이룩하셔야 했지만, 타고나신 두뇌 덕분에 당신의 사전엔 불합격이란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다. 부대에서 일어난 뜻하지 않은 사고로 불명예제대만 하지 않으셨다면…. 아버지 동기분들은 전역하신 후에도 오래도록 대한항공 기장으로 활동하셔서 모두 잘 사시는데 그 대열에 아버지가 끼지 못하신 것이 참으로 원통하다.
그저께 둘째 누나와 함께 - 아버지를 위한 - 환경이 좋은 원룸을 하나 계약했다. 괜찮은 원룸인 만큼 계약금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아버지가 혼자 살고 계신 월셋집의 환경이 너무 열악해서 더는 미룰 수가 없었다. (* 내 주민등록상 주소도 이곳으로 되어 있어서 내 뒷조사를 한 인간들, 아니, 비인간들이 나를 - 미국 유학은커녕 외국생활 한 번 해본 적 없는 - 사기꾼으로 몰아세웠다.) 재래식 부엌은 바닥이 깊이 꺼져 하수가 고여 있어 천장까지 곰팡이 천지였고, 천장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계속 내려앉아 언제 무너질지 모를 위기에 처했다. 왕년의 비행대장께서 칠순 잔치를 치를 여유도 없이 이른 새벽부터 택시 운전을 하시느라 고생하시는데 자식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있어서 늘 죄스런 마음뿐이다.
오늘은 큰누나와 작은누나, 나까지 셋이서 불필요한 짐들을 정리하고자 아버지 집에 모였다. 어머니의 향기가 여전히 배어 있는 낡은 옷들은 노란 재활용 박스에 버리고 어머니의 손때가 채 지워지지 않은 세간들까지 모조리 끌어내는 동안 내내 비는 쉬지 않고 퍼부었다. 당신이 애지중지하시던 물건들을 정리하는 것이 못내 섭섭하신가 보다.
2004.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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