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an의 眞한 이야기/Jean의 眞한 이야기

발인이 시작되기 전

Jean2 2011. 5. 7. 19:01

발인이 시작되기 전 이른 아침에 야후 영어 채팅방에서 만나 한동안 친분을 맺어온 영어 번역사 Mrs Fairy가 마지막 문상객으로 찾아왔다. 내 카페에 들어갔다가 부음 소식을 접하고는 바로 달려왔단다. 얼마나 감사한지….

 

어제저녁 퇴근 후 바로 달려온 사랑하는 친구 영교는 운구까지 마치고 바로 출근을 했다. 내가 도움을 주지는 못하고 내게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은혜를 베푸는 그에게 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내 언어로는 다 표현할 길이 없다.

 

어머니께서 마지막 사투를 벌이시던 날 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영구차가 화장장에 도착할 때까지 그칠 줄을 모른다.

 

영구가 불가마니 속으로 들어가고 문이 닫히도록 이 기막힌 광경을 난 현실로 인정하지 못했다. '꿈일 거야. 내 어머니는 돌아가시지 않았어.'

 

경준이의 식사도 챙겨주지 못하고 계속 넋을 잃고 있다가 성규형의 손에 이끌려 식당으로 내려갔지만, 한술만 억지로 뜨고는 식당을 나왔다. 어머니는 지난 45일간 아무것도 드시지 못했는데 불효자식이 어찌 배를 채울 수 있을까.

 

거의 3시간이 다 되어서 살 한 점 남아 있지 않는 어머니의 유골이 황토함으로 차곡차곡 담기고 있었다. 너무 슬퍼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 억장이 무너진다. 엊그제만 해도 당신의 팔과 다리를 주물러 드리고 일주일 전만 해도 머리를 감겨 드렸는데 한순간에 한 줌의 재만 남기시고 사라지셨다.

 

불가마니의 열기가 채 식지 않은 유골을 모시고 통일로 추모공원으로 향했다. 언젠가는 돌아가실 것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떠나실 줄은 생각지 못했기 때문에 영정 사진도 장례식장에서 만들어야 했고, 장지도 사전에 둘러볼 겨를도 없이 사진만 보고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러나, 계약금을 지급한 납골단은 사진 속의 것과는 달리 전망이 전혀 없는 축대벽으로 막힌 곳이었다. 장사꾼의 상술이 다 그러려니 하고 그냥 넘겨버릴 수 없는 중대한 문제라 당장 담당자와 책임자를 불러 모았다. 어머니는 어두운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셨기 때문에 지하철이 다니는 지역에서도 버스만 이용하신 분인데, 왜 사진과는 전혀 다른 납골단을 분양해 주었느냐는 질문에 구구한 변명만 늘어놓는다. 전망이 좋은 곳은 모두 예약이 되었거나 임시처분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정을 미리 얘기해 주었다면 물론 계약을 하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든 계약만 성사시키면 그만이라는 수작이 참으로 괘씸하다.

 

2시간의 실랑이 끝에 부부단 계약을 파기하고 개인단비만 지급했다. 어디까지나 임시 안치일 뿐이다. 평생을 고생만 하시다가 효도를 보시기도 전에 떠나신 분을 이런 곳에 모실 수는 없는 일이다. 마음 같아서는 흡족한 납골단을 찾을 때까지 집에서 모시고 싶지만, 그때까지 누구도 상복을 벗을 수 없어서 분함을 억누르고 타협을 했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초우제를 올렸고 한림병원으로 돌아오자 이미 초저녁이 되어 있었다. 경준이가 수고를 많이 해서 부평에 데리고 가서 융숭히 대접도 하고 재워서 보내려 했지만, 녀석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고향에 내려가도록 했다.

 

제리가 하늘나라로 떠났을 때도 집안이 휑해서 몇 달을 슬픔 속에서 지냈는데 어머니의 빈자리는 하늘보다 높고 땅보다 넓다. '천추의 한을 생전에 풀어 드리지 못한 불효자식을 용서하세요, 어머니….'

 

여전히 비는 그칠 줄을 모른다.

 

2004.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