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Jean's English Clinic을 폐쇄하기에 충분한, 그리고 폐쇄한 지 4년이 넘도록 다 벗지 못한 누명을 씌운 大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에 대해 언급하겠다. 울산 아가씨가 상경하기 전에 가입한 - 경원대 신문방송학과에 재학 중이던 - 여대생이 있었다. 미모에 자신이 있었던지 회원 사진방에 본인의 사진을 바로 올렸고, 가입한 날 내게 카페ON을 띄워 바로 '오빠'라는 호칭을 사용할 만큼 꽤 붙임성이 있는 존재였다. 카페에 접속할 때마다 카페ON으로 대화를 요청해서 그 사악한 존재를 위해 참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나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많았던 그녀는 끝내 내 아픈 - 현재까지 이어져 온 - 버겁던 과거사까지 캐내기에 이르렀고 누구나 쉽게 말할 수 있는 위로의 메시지도 띄웠는데 당시는 내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준 그녀가 고맙기까지 했다. 그러나 큰 실수였다.
요즘은 (* 2004년 12월 23일에 폐쇄한) MSN 홈피나 플래닛 때문에도 더 많은 사람이 길거리나 전철 안에서 나를 알아보지만, 당시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내가 Jean's English Clinic의 주인임을 한눈에 알아보는 일이 허다해서 무의식중에 이목의 구애를 받기 시작했다.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는 아가씨들의 메일도 숱하게 날아왔고, '진오빠' 내지는 '진님'과 사귀고 싶다는, 혹은 결혼하고 싶다는 글까지 게시판에 올리거나 단체 채팅 중에 공공연히 발표해서 내 입장을 아주 난처하게 만든 이들이 많은데 그중에는 유부녀들도 몇 있었고, 여고생들도 상당수를 차지했다. 이 문제 아닌 문제에 대해서 당사자인 나보다 더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던 존재가 바로 그 경원대생이었다.
어느 날 그녀가 내게 물었다. 만약 나를 좋아하는 여고생이 진지하게 프러포즈를 한다면 (나이가 많은) 나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 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세상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 예를 들면 연상의 여인을 좋아하는 남자들, 연하의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들, 나이 차이가 꽤 나는 이성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 골고루 공존해야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이 된다고 덧붙였다.
나를 힐책하고 훈계하는 그녀의 건방진 글이 - 남자의 평균수명이 여자보다 짧으니 당연히 나이가 최소한 비슷하거나 남자가 더 어려야 한다는 둥, 그래서 그녀의 남자친구도 연하라는 둥 - 1시간을 넘어갔고, 다시 내 입장과 감정을 변호하는 글이 1시간을 넘어간 뒤에 비로소 그녀가 수긍했다. 내겐 경제적인 고충만큼 여자들로 말미암은 아픔도 많아서 남자들과 사고의 구조가 전혀 다른 여자들의 처지에서도 - 내 연애사를 들어본 이라면 - 누구도 나의 타당성에 반박하지 못한다.
최근에도 眞한 이야기를 읽고 몇 사람이 내게 메일을 보냈는데 장황한 글을 읽어준 것에 대한 고마움과 동시에 나를 완전히 오판한 것에 대한 불쾌감이 교차하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의 위로는 위로가 될 수 없고, 내가 원하지도 않는 충고를 듣는 것은 참 불유쾌한 일이다.
이후로 나는 그 잘난 경원대생과의 충돌을 피하고 싶어서 대화를 꺼려왔는데 그녀가 끊임없이 내게 요구해왔던 문제가 있어서 대화창을 무조건 회피할 수만도 없었다. 수업을 받고 내려간 회원들이 내 수업에 대한 극찬의 글을 게시판에 올려놓을 때마다 그녀도 내 수업에 관심을 두고 그녀 역시 수업을 받고자 했지만, 나는 바쁜 스케줄을 핑계 삼아 거부해왔다. 사실 밤 11시까지 수업이 계속 있어서 빈 시간도 거의 없었지만 건방진 제자를 받고 싶은 사부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근 두 달을 그렇게 미뤄왔는데 그녀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곧 미국 유학길에 오르니 '제발' 수업을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해서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일주일에 한 번만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러나….
(수업을 받기 전날 밤 메신저 대화 내용)
그녀 :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Jean : "무엇이지?"
그녀 : "오빠는 정말 양심에 맹세코 성심성의껏 가르치세요? 빨리 대답해주세요. 그래야, 배우든가 말든가 하지."
Jean : "어떻게 감히 그런 질문을 할 수가 있지?"
그녀 : "왜요? 물어볼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빨리 대답이나 해주세요!"
Jean : "정말 생각이 없는 아이로구나. 내 수업을 받게 해달라고 애원한 사람이 누구지? 회원들의 글을 지켜보면서 네 판단으로 내린 선택이 아니던가?"
그녀 : "아니 왜 제 질문에 대답은 안 하시고 쓸데없는 말씀만 하세요?"
Jean : "너도 알다시피 오빠 학생들이 비싼 차비, 숙박비까지 지급하면서 전국에서 올라오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겠니?"
그녀 : "그러니까 성심성의껏 가르치신다는 거죠? 그렇게 말씀하시면 되지. 알았어요. 내일 몇 시에 갈까요?" ^ ^*
Jean : "오지 말아라."
그녀 : "왜요?"
Jean : "너는 배울 자세가 안 되어 있어."
그녀 : "좆같은 놈!"
Jean : "뭐야?"
그녀 : "부모 잘못 만나서 그 나이 처먹고 과외밖에 못하는 놈이 감히 누구한테 훈계야? 나는 내 부모님한테도 야단을 맞아본 적이 없는데. 개새끼! 두고 봐라. 내가 미국 가면 너보다 영어 100배는 더 잘해서 돌아올 거다..... (이하 생략)"
더는 상종할 가치가 없는 존재라 메신저를 닫아버렸다. 그러나 그녀를 메신저 친구목록에서 삭제하고, 대화창 수신 거부에 추가하기도 전에 그녀의 창은 1초가 멀다 하고 떠서 군대에서나 들을 수 있는 온갖 더러운 욕을 퍼부었다. 난 끝까지 참아내고 카페로 돌아가서 강제탈퇴처리하고 내게 메일도 발송하지 못하도록 조처를 하고 나서 몇 시간 뒤 시작할 강의를 위해 불쾌한 감정을 억누르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내 의지로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상일동의 제자가 긴급 메시지를 보냈다. 서둘러 카페에 들어가 보니 밤새 새로운 아이디를 만들어 가입하고, 나를 모함하고 비방하는 글로 게시판을 도배해 놓았다. 내가 읽어봐도 내가 너무 나쁜 사람인 완벽한 시나리오를 작성해 놓았으니…. 그 글을 읽은 500여 명의 회원 중 - 나를 잘 알지 못했던 - 400명 이상이 그날 탈퇴했다. 그동안 그녀에게 들려준 모든 이야기가 내게 불리하게 작용한 것이다. 삭제하고 탈퇴시키면 또 새로운 아이디를 만들어 가입하고 공격하기를 멈추지 않았고, 그래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 경원대 동문까지 합세시켜서 연합작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용단을 내렸다.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또한 진상 규명에 필요한 내 아픈 과거사와 현재 상황까지 공개하는 전체메일을 띄워 아직 탈퇴하지 않고 남아 있는 회원들의 오해를 완전히 풀자 그들로부터 하루 400통이 넘는 위로와 격려의 메일이 날아들었다. 그러나 연합세력의 공격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친구가 도대체 몇 명이나 가입을 한 것인지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신성한 카페가 일순간에 쓰레기 처리장으로 변했다. 유유상종.
전체메일로 카페를 폐쇄하겠다고 통지하자 다시 과반수가 아쉽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탈퇴했지만, 끝까지 탈퇴를 안 하고 나와 함께 하겠다는 고마운 회원들이 있었다. 그들의 간곡한 요청하에 비밀리에 비공개로 개설한 카페가 바로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카페'였다. 한동안 게시판은 하나밖에 없었다. 게시판 名도 '오직 하나뿐인 게시판'이었는데 그들은 그저 나와의 인연을 계속 이어갈 수 있어서 기쁠 뿐이라고 했다. 그때가 2002년 4월.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가?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나서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카페'를 개설하고 파티까지 열었는데…. 어머니께서 갑자기 걸음을 옮기지 못하시고 주저앉으셨다. 어머니의 암 재발. 그날 사주신 두 켤레의 신발은 내가 죽는 날까지 보관할 어머니의 마지막 선물이다.
2006.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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